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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간다는 것[오아시스]

2003.04.19 00:42

TOTO 조회 수:1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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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독 : 이창동
출연 : 설경구, 문소리

처음엔 광고를 보고 그저 흔한 멜로영화인 줄 알고 그냥 지나치려 했다. 인간의 보편적 감성이란 특성을 이용하여 안이하게 만든 영화가 그동안 많이 있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오아시스란 영화가 날를 붙잡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창동, 설경구라는 두 이름이었다.

그동안 발표된 초록물고기, 박하사탕을 통해 내가 본 이창동 감독은 가슴 한가운데 따뜻한 휴머니즘을 간직한 차가운 사람이다. 따뜻함을 간직한 차가운 사람이라니? 그는 우리가 사는 현실에 매우 비판적이다. 초록물고기에서는 우리 사회에 해체되어 가는 가족의 모습을 담담히 그려냄으로서 오히려 더욱 차갑고 매몰차게 그것을 비판했다. 그리고 박하사탕에서는 군사독재라는 상황 아래서 순수함, 인간미를 잃어 가는 한 사람의 일생을 그려냄으로서 그런 잘못된 역사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잘못된 역사를 완전히 잘라버리지 못하는 우리 사회를 조소했다. 이러한 담담함 때문에 더욱 차가워지는 그의 비판을 그러나 싫어할 수 만은 없다. 그의 비판과 냉소는 그런 병폐를 앓고 있는 우리사회를 다른 이들보다 애정을 갖고 지켜보아야 발견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의 영화를 통해 이런 모습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우리에게 외치는 동시에 왜 바꾸지 않는가 하는 처절한 외침을 보내고 있다. 이 때문에 그는 따뜻함을 품고 있는 차가운 사람이다.

설경구는 이창동 감독과 박하사탕 이후 이 영화가 두 번째 공동작업이다. 나에게 설경구는 이제서야 나타난 것이 너무나 안타깝기만 한 배우다. 그는 연기하지 않는 연기자다. 그의 연기는 연기를 한다는 느낌보다는 실제로 그 영화 속의 인물일 것 같은 느낌이 더 강하게 든다. 그의 연기를 보고 있자면 그가 연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가 매우 힘들다. 비디오가 되어야 영화배우로서 한 몫 하는 풍토속에서 외모보다는 연기속에서 매력이 느껴지게 하는 유난히 튀는 배우중의 한사람이어서 너무 좋아하는 배우였기에 그는 이번 영화를 내가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한 이유가 될 수 있었다. 그에게는 어떠한 인물이라도 정말 그럴 것 같도록 변신하기에 충분한 배우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봤다. 극중에서 종두의 형은 말한다. 너도 어른이 되어야 하지 않겠니, 그리고 어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그리고 형은 바로 대답한다. 마음대로 살지 않고, 남의 이목을 신경 쓰면서 살아가는 것이 어른이라고... 우리는 살아가면서 스스로를 속박한다. 예의, 다른 사람의 이목 등 우리가 이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신경 써야 할 것이 너무 많이 있다. 장애를 가진, 그것도 형이 뺑소니를 쳐서 사고 나게 만든 사람의 딸인 공주를 사랑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이목에서는 자연스럽고 올바른 것이 결코 아니다. 내가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내가 아무리 아낀다 해도... 그리고 극중 형사의 말처럼 그런 장애인과 성관계를 갖는 것은 사회의 이목에서는 변태스런 행동임이 당연하다. 왜냐하면 장애인을 보고 성욕이 난다는 것은 그들의 관점에서는 불가능하니까... 따라서 그들이 성관계하는 장면을 목격했을 때 당연히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는 장애인을 강간하는 강간범으로 종두는 몰릴 수 밖에 없다.

공주와 종두는 둘 다 하얀색을 좋아한다. 깨끗하기 때문에...우리는 모두 본래 공주가 거울로 장난칠 때 나타났던 하늘을 자유롭게 나는 하얀 새나 하얀 나비처럼 깨끗하고 자유스런 존재로 태어났을 것이다. 그러나 그 둘은 그러한 순수함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 사회에서는 천덕꾸러기일 뿐이다. 종두는 앞서 말한 것과 같은 이 사회에서 지켜야 할 것을 모른체 그저 순수하기 때문에 그의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어야 할 가족들조차 그를 너무나 싫어한다. 공주 역시 선천적인 장애인이기에 항상 새나 나비처럼 날고 싶은 영혼을 장애를 가진 신체 속에 묶어둘 수 밖에 없고, 그러한 장애 때문에 종두와 마찬가지로 가족들에게 버림을 받는다. 우리 사회에서 너무나 순수한 것은 죄악이다. 죄를 가진 사람들이기에 종두는 형의 사고를 대신하여 감옥살이를 하고, 공주는 오빠부부에게 장애인을 위한 아파트를 내주고 허름한 집안에서 살아간다. 우리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순수하기만 해서는 안된다. 이렇게 이용할 것은 최대한 이용하면서, 또한 신경쓸 것은 신경쓰면서 살아가야 한다.

나 역시 이러한 사회 속에서 잘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잘 살아가고 있다는 것 자체가 본래 하얗게 태어났을 영혼을 더럽혀서, 그리고 마음껏 날개짓 하고 싶은 영혼을 구속하여서 얻은 성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가끔씩 든다. 나 역시 극중의 식당에 있던 손님들처럼 장애인이 있으면 얼굴을 찌푸릴 수 밖에 없는 우리 사회의 구성원일 뿐이니까...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얼얼했다. 뒤통수를 너무나 세게 맞은 기분이 들어서 말이다. 그리고 이창동 감독이라는 사람이 참 무섭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고 느끼고 있는 것들에 대해 항상 예의주시하고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