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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주변을 바라보는 차가운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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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2 수, 목 밤 9:50
연출 : 이건준
극본 : 송지나
제작 : 김종학 프로덕션
출연 : 김승우, 유호정, 배두나, 연정훈, 장현성, 박정학, 김미경, 정영숙, 장항선

여기 한 부부가 있습니다. 항상 철부지 어린아이 같지만 아내를 너무도 사랑하는 남편 영도(김승우 분), 그리고 오직 아이들과 남편만이 이 세상의 전부로 여기는 아내 정연(유호정 분). 그들은 영원하고픈 행복한 생활을 하는 평범한 부부입니다. 하지만, 정연에게 내려진 암선고는 그 행복한 부부에게 끝내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게 됩니다.

이 드라마는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로 유명한 작가 송지나가 참여해 시작부터 주목을 받는 작품이었습니다. 스케일 큰 서사물을 주로 써왔던 작가가 쓰는 멜로는 과연 어떠한 모습일까에서 오는 의문과 염려 속에서 '로즈마리'는 시작되었습니다.

'로즈마리'는 한편의 아름다운 소설 같은 느낌을 줍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집, 세상 사람들이 갖는 경제적인 근심들은 찾아볼 수 없는 등장인물들. 드라마를 나누는 또 다른 기준을 살펴보자면 철저히 현실적이어서 시청자들로 하여금 드라마에 동화되도록 하는 드라마와 철저히 비현실적이어서 드라마 속에서나마 현실을 멀리한 채 등장인물들의 삶을 살아보는 드라마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로즈마리'는 철저히 후자 쪽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철저한 '비현실성'은 우리로 하여금 등장인물들을 통해 또 다른 세상을 경험할 수 있고, 그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게 합니다.

보통의 드라마가 주된 이야기 외에 두가지 혹은 세가지의 다른 이야기를 함께 이끌어나가고 있는 반면 '로즈마리'는 철저히 영도와 정연 부부에게 시선이 멈춰 있습니다. 물론 영도의 부하직원이자 정연과 절친한 사이가 된 경수(배두나 분)의 이야기가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후에 전개될 스토리에 있어 지금보다 무게가 더해갈 경수의 인물에 대한 묘사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의 이야기도 드라마를 이끌어 가기에 '로즈마리'는 등장인물 개개인의 감정묘사에 더욱 충실할 수 있었습니다. 같이 아플 수 없기에, 해줄 수 있는 것이 없기에 슬픈 영도의 표정과 대사 하나하나에, 자신이 아픈 것이 주위 사람들에게 미안하기만 한, 자신이 아픈 것은 절대 아이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정연의 감정과 눈물에, 단순히 폭력가정에서 자랐다는 묘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환경에서 자랐기에 좋은 사람들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끼는 경수의 표정에 '로즈마리'는 더욱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우리들은 등장인물의 감정과 더욱 동화될 수 있고, 이는 결국 드라마의 배경에서 이루지 못한 '현실성'을 또다른 형태로 추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직유법보다는 은유법이 보다 설득력있고 큰 감화를 일으키듯, '로즈마리'는 직접적인 등장인물의 슬픔과 애환을 묘사하기보다는 등장인물의 행동과 간접적인 묘사로 더욱 슬픔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여명의 눈동자'와 '모래시계'에서 그토록 장대한 이야기 속에서 등장인물 하나하나의 애환까지도 현실적으로 살아움직이게 했던 작가 송지나의 능력은 이야기의 장르와 형식이 달라진다 해도 전혀 빛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궁극은 어디에서나 통한다.'는 말을 요즘 계속 실감하고 있습니다.

물론, 가장 큰 힘은 이러한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뛰어난 배우에게 있는 것이겠지요. 평소에 지니고 있던 밝은 이미지의 김승우, 하지만 그의 규격화 된 그 '밝음' 덕분에 그가 연기하는 슬픔은 배가 됩니다. 그리고 오히려 예전보다 더 아름답고 더 깊은 연기력을 보여주는 유호정, 그녀의 눈물 연기는 그냥 보고 있기가 힘이 들더군요. 또한 '굳세어라 금순아', '위풍당당 그녀'로 단지 '발랄하고 철없는 아가씨'로만 인식되어 있던 배두나는 그 장점을 지닌 채로 자연스럽게 변신하는데 성공한 듯 보입니다.

이러한 요소들과 신인 감독의 아름다운 영상미가 결합된 '로즈마리'. 그 아름다운 부부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