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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의 자리 굳히기[올드보이]

2003.12.01 21:19

TOTO 조회 수: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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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독 : 박찬욱
출연 : 최민식, 유지태, 강혜정, 윤진서

서스펜스적인 요소와 한민족의 특수성을 조합하여 본격적인 웰메이드(Well-made)영화의 시대를 열었던 '공동경비구역 JSA', 흥행에 있어서는 약간 고전했지만 '텔미썸씽'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는 한국적 하드고어(Hard-gore) 영화의 장을 확연히 연 작품이'복수는 나의 것'이라고 한다면 '올드보이'는 전작의 서스펜스적인 요소와 후작의 하드고어적 냄새를 동시에 갖고 있는 박찬욱 감독의 최신작이다. 그러나 이전 작품의 두 요소가 결합되어 있다고 하여 단순히 그 요소만의 결합이라고 단정하기는 이르다. 화학에서 단지 섞여 있기만 한 물체를 혼합물, 그리고 섞이게 되어 그 성질까지 변하게 된 물체를 화합물이라고 구분하듯, '올드보이'는 이전 작품 요소들의 혼합물이 아닌 '화합물'이기 때문이다.

'올드보이'의 서스펜스적 요소는 물론 일본의 만화에서 따왔다는 스토리에 있다. 영문도 모른채, 15년간 갖혀있던 오대수(최민식 분)가 그를 가뒀던 이우진(유지태 분)에게 복수를 꿈꾸며 더불어 갖힌 이유를 알아나가는 진행에서 관객들은 영화의 종반부까지 그 궁금증을 간직하고 영화를 따라가야 한다. 그러나 서스펜스적 요소에 있어서 스토리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배우의 연기력이다. '공동경비구역 JSA'에 김태우의 뛰어난 연기가 극중 내내 초초함과 불안을 야기시킨 것처럼 말이다. 이 점에 있어서 최민식은 연기력에 있어 조금도 모자람이 없는 배우였다. 촬영이 전체적으로 그의 얼굴을 클로즈업하여 촬영한 부분이 많았는데도, 그의 표정은 어색함보다는 그의 감정을 충실히 전달하는 훌륭한 매개체가 되었다. 그리고  영화 내내 진행되는 그 무뚝뚝함 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그의 '허무개그'식의 개그는 웃는 가운데에서도 더욱 긴장감을 죄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복수는 나의 것'에서 비교적 비위가 강한 나조차 눈을 나도 모르게 가리게 하는 장면이 많았다. '올드보이' 역시 전작보다 조금도 모자라지 않은 '피잔치'가 이어진다. 그러나 '올드보이'가 보다 더 잔인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는데 이는 다분히 감독 박찬욱의 능력이 아닌가 싶다. '복수는 나의 것'은 영화 내내 전체적으로 환한 톤이었고, 이는 영화 내에서 진행되는 잔인한 장면 역시 그 맛을 조금은 누그러뜨렸다. 반면 '올드보이'는 영화 전체적으로 회색빛 느낌이 물씬 풍긴다. 이 때문에 '올드보이'에서의 하드고어적 요소는 전작보다 더욱 차갑고 잔인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물론 같이 본 친구의 말대로 '과연 우리나라에 하드고어 영화가 존재하는가?'라고 묻는 다면 '아니오'라고 대답할 사람이 많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영화시장이 지금과 같은 개방적인 형태로 된 기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한다면, 단순히 하드고어 장르의 특징으로서 '데드 얼라이브'나 '감각의 제국'류의 영화를 우리나라 영화와 비교한다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기간이 존재해야 발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텔미썸씽', '복수는 나의 것', 그리고 '올드보이'. 언젠가 훗날 우리나라의 하드고어 영화의 역사라 한다면 이 세 영화가 나란히 서게 되고, 감독 박찬욱이 가장 위에 위치할 날이 올 지 모를 일이다.

이렇게 '올드보이'의 두 요소를 살펴 보았지만 '올드보이'를 화합물이라 칭했던 것은 감독의 연출력이었다. 분명 '공동경비구역 JSA' 나 '복수는 나의 것'보다 '올드보이'는 분명 더 세련되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핸드헬드(Hand-held) 촬영의 적절한 조화,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에서 흐르는 핑크톤 흑백의 분위기, 주인공의 심리를 보다 적나라하게 묘사할 수 있게 했던 과거와 현실의 모호한 구분등의 갖가지 요소는 전체적인 회색빛 톤의 흐름과 절묘하게 조화되어 있었다. 영화의 분위기에 맞춰 영화의 색을 조절할 줄 아는 감독. 이 정도면 전작에 비해 '올드보이'에서 보다 성숙한 연출력을 보이는 박찬욱감독을 적절히 묘사한 듯 하다.

집에 돌아오는 버스 속에서 멀미를 했을 정도로 영화는 2시간 내내 숨쉴틈 없이 흘러간다. 괜찮은 영화를 봤단 느낌에 행복하긴 했지만 몇가지 아쉬운 점은 '개연성'이다. 미도(강혜정 분)와 오대수가 만나기까지의 과정을 다분히 체면술로 설명해버린 점 등에서 관객은 서스펜스적 요소에서의 흥미를 조금은 잃을 지도 모르겠다. 서스펜스 장르의 특성상 결과가 극의 진행과정을 완벽하게 설명될수록 관객들의 희열과 충겨은 배가 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마지막에서 오대수가 이우진이 가리킨 사진첩을 넘기는 장면에서는 몇초간 숨을 쉴 수 없었다. 서스펜스 영화에서 영화의 결론을 풀어가는 장면이 어찌보면 백미라 할 수 있을 것인데, '올드보이'의 마무리 역시 꽤나 괜찮았다. 그리고 오대수가 망치를 들고 자신을 감금했던 무리들과 벌이는 격투신 역시 괜찮은 장면으로 기억된다. 대부분의 격투신은 짧은 호흡의 컷으로 그 속도를 커버하지만, '올드보이'는 이러한 통속적 개념을 뒤집으며, 편집기술 없이 박진감 넘치는 격투신을 보여주고 있다. 그 장면이 마치 예전 유행하던 오락(이소룡이라고 혹시 아시는지...)과 흡사해서 탄성을 지르는 동시에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아마도 어렸을 때 즐겨했던 오락을 자신의 영화에 대입한 것은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