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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주변을 바라보는 차가운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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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이승엽의 진로는 일본 프로야구의 롯데로 결정났다. 모든 조건이 수용되어졌고, 이제 형식상의 절차로 사인하는 것만 남았다. 프로야구에 대해 아무런 관심없는 사람 조차도, '홈런왕 이승엽'은 알 정도로 그는 한국 프로야구의 역사상 크게 기록될 '거물'임에는 틀림없다. 그가 그동안 갈아치운 기록만 하더라도 국내의 여러 기록 뿐 아니라 아시아 홈런 신기록까지, 그는 분명 한국 프로야구가 낳은 보물임에는 확실하다.

하지만 11월부터 시작된 그의 행보는 단지 그가 '한국 프로야구의 보물'의 모습일 뿐, 인간적으로 멋진 선수의 모습은 아니었다. 그는 그동안 수많은 인터뷰에서 '한국 프로야구의 자존심을 지키겠다.'는 뉘앙스의 발언을 여러번 했다. '한국 프로야구의 최대 거물'인 만큼, 그만큼의 합당한 대우를 받으며 메이저리그에 입성하겠다는 것이 그의 의지였다.

프로선수라는 것은 말 그대로 자신의 실력을 바탕으로 돈을 버는 직업이다. 따라서 자신이 인정받는 만큼, 더욱더 큰 부를 쫓는 것은 프로선수로서 그리 욕될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선수들이 더 큰 부를 위해 일본으로, 메이저리그로 진출한 것을 가지고 누구 하나 황금만능주의에 찌든 속물이라고 욕한 사람은 없다.

하지만 문제는 이와 같이 자신의 부를 위해 향한 진로에서 그가 내건 '한국 프로야구의 자존심'이란 단어다. 단순히 자신의 더 큰 부와 명예를 위해 메이저리그로 향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국 프로야구 선수의 자존심을 손상시키지 않는 대우' 내에서 메이저리그로 향하겠다는 말을 했다. 지금껏 한국 프로야구는 쉽게 말해 일본 프로야구나 메이저리그 등 더 큰 부와 명예를 획득할 수 있는 길로 가는 발판 역할밖에 안된다는 말이다. 진정으로 '한국 프로야구의 자존심'을 생각한다면 한국에 잔류하여 한국 프로야구의 수준을 더욱 향상시키고, 그로 인해 메이저리그나 일본 프로야구의 관계자들이 주목하는 리그로 만들어 가는 것이 진정한 '한국 프로야구의 자존심'을 지키는 길이 아닐까 한다. 한국 프로야구의 수준이 올라가면, 그렇게 부르짖지 않아도 '자존심'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니 말이다. 물론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뛰어난 실력으로 한국 프로야구를 제압하고 더 큰 무대로 달려들겠다는 데 누가 욕하는 사람은 없다. 단지, 오직 자신만을 위한 행로에 괜한 민족주의적 발상이 다분히 담긴 '한국 프로야구의 자존심'등을 운운하지 말라는 얘기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어느정도 인정받으면 일본행이나 미국행을 당연히 고려하는 우리 프로선수들의 뇌리 속에서 한국 프로야구는 더 큰 욕심을 위한 발판으로 각인되어 있을 뿐이다. 당연히 그들에게 '한국 프로야구의 자존심'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승엽 또한 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또 하나의 실망은 이승엽 개인에 관한 것이다. 이승엽은 1976년생, 우리나라 나이로 치면 스물 여덟, 외국 나이로 치면 스물 일곱이다. 그의 나이는 한국 프로야구에서조차 어린 편에 속하고, 메이저리그의 시각에서 보자면 굉장히 젊은 축에 속한다. 그는 오랫동안 메이저리그를 꿈꿔 왔다고 했다. 그리고 그에게 관심을 보인 LA 다저스는 3년간 300만 달러, 즉 1년에 11억 정도의 금액과 주전 1루수 정도를 제의했다. 그가 비록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최고의 타자에 속하지만, 아직 메이저리그의 경험이 전무한 그에게 이정도의 제의는 다른 시각에서보면 파격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 최고의 선수였던 그에게 1년의 11억원은 '원만한 생활을 하기에 힘든 금액'이었다. 집과 차를 사면 남는게 없다나? 10년 가까이 한국 프로야구 선수로 생활해오면서 그가 획득한 부는 아마도 추정컨데 그의 남은 인생을 아무런 걱정없이 보장해 줄 정도는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는 결국 그가 70%의 가능성을 둔 국내행도 아닌, 2년간 55억, 초호화 외제 승용차와 주택을 제시한 일본행을 택했다. 오랫동안 그려온 꿈, 그리고 아직 젊다고 할 수 있는 그의 나이. 여러가지를 고려한다면 과장해서 연습생으로 들어가서라도 그의 꿈을 실현하는 것이 젊은 이승엽에게 어울리는 행로가 아닐까? 그의 팬들 중에서는 굳이 '자존심'을 상해가면서 메이저리그행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 또한 많지만, 진정으로 도전적이고 패기있는 젊은 선수라면 더 큰 무대에서 자신을 단련시키고, 결국 그 곳에서도 한국에서처럼 큰 선수로 성장하여 결국은 지금 그를 냉대했던 많은 구단들에게 통쾌하게 복수하는 것이 그에게는 '자존심'을 세우는 것이다. 하지만 젊고 패기있고, 도전적인 모습보다, 이승엽은 '한국 프로야구의 최고선수'라는 이름에 너무 익숙해져 있는 듯 하다. 어딜 가나 최고의 대우를 받고, 어딜 가나 온갖 시선이 그에게 주목하는 것이 그에겐 익숙하니 말이다. 그가 생각하는 '한국 프로야구의 자존심'은 그가 지금껏 한국에서 이룬 성과를 보고 모든 메이저리그의 관계자들이 쌍수들고 최고의 대우를 바치며 환영하기를 기대했던 '자만심'에 불과하다. 자존심이 아닌 자만심을 택한 스물 여덟의 한국 최고 슬러거 이승엽, 그는 그렇게 우리의 곁을 떠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