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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주변을 바라보는 차가운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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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수, 목 밤 9:55
연출 : 최용원, 이재원
극본 : 예랑
출연 : 황신혜, 안재욱, 오승현, 권오중, 조미령, 이주현, 유열, 지상렬, 김명국, 최상학
방송 : 2003. 11. 10 ~ 2004. 06. 04

캐릭터가 중심이 되는 이야기에는 뛰어난 연기자가 필수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천생연분'은 외형상으로는 매우 가벼운 코미디극이지만 조금만 지켜보면 곧 캐릭터의 묘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가고 있음을 금방 알 수 있다. 오랫만에 드라마에 컴백한 황신혜와 안재욱, 그리고 단순 코믹물로 승부를 건 '천생연분'은 이미 초호화캐스팅과 대중성 뛰어난 코드로 무장한 '천국의 계단'에 밀린 상태에서 시작됐다.

난 실제로 노처녀 히스테리가 존재하는지, 왜 존재하는지 알지 못한다. 단지 시중에 떠도는 근거없는 이야기일 뿐이려니 치부해버리곤 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부부생활이 왜 힘든 것인지, 사랑하는 사람을 놔두고 다른 사람을 만나는지 또한 아직까지 잘 알지 못한다. 그저 쓸데없이 굵어진 머리로 이리굴리고 저리굴려 이론적으로 상상체험을 해 봤을 뿐이다. 때문에 자연히 그저 머리 속에서만 떠도는 개념들일 뿐, 내게는 전혀 공감되지 않는 이야기이었다.

서른 중반을 훌쩍 넘어버린 스튜어디스 종희의 역을 맡은 황신혜. 모든 것을 갖추었지만 많은 나이에도 가지지 못한 애인 때문에 겪는 그 서러움을 너무도 잘 보여주었다. 나이와 함께 능력과 명망을 갖추어가면서 같이 자라난 자존심, 이 때문에 커플 모임에서 잘 알지도 못하는 동생 친구를 억지로 데려가는 장면은 웃음과 동시에 나에게는 와닿지 않는 장면임에도 깊은 서글픔을 가져다주었다.

어려운 집안형편 때문에 큰 야망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은행원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석구역을 맡은 안재욱. 비록 영화에서는 큰 빛을 못 본 배우지만 적어도 드라마에 있어서는 그 연기력과 매력을 무시할 수 없는 배우임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계략적으로 종희에게 다가갔지만 순수했던 그였기에 그 다가감이 자연스럽게 사랑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보여줬다.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결혼까지 끌고 갔지만 확연히 다른 성장배경 덕분에 종희는 석구에게 상처될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그리고 석구는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말을 깊이 새긴 덕분에 '천생연분'은 거의 매회 다툼과 화해를 반복했다. 자칫 반복되는 서술 구조 때문에 지루해 질 가능성은 충분했지만 그렇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두 연기자의 능력 때문이다. 수십년동안 다른 배경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결합, 그것이 둘의 사랑으로 전부 커버할 수 있는 단순한 문제는 아님을 잘 보여줬다.

나같은 혹은 더 어린 세대들에게는 '이런 것이구나'하는 이해를, 그리고 나보다 더 윗세대들에게는 '맞아맞아'하는 공감을 주는 드라마, 그리고 그 사랑의 과정을 유쾌하게 그려냈던 드라마가 '천생연분'이었다. '다모'에서 멋진 연기를 보여줬던 권오중은 전혀 다른 이미지로 변신하여 드라마의 감칠맛을 더했고, 조미령과 같이 보여줬던 닭살 연기 덕분에 난 한동안 느끼함 때문에 속이 거북했었다.

그러나 기껏해야 스무회도 되지 않는 미니시리즈에서 캐릭터의 묘사에 초점을 둔 덕분에 그 외의 이야기는 조금 건성건성(예를 들면 게임 중독자 권오중과 은행원 세명이 게임을 만들어 벤처에 성공한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 또 비현실적으로 이끌어 갈 수 밖에 없었던 점은 어쩔 수 없음을 인정하면서도 아쉬움으로 남는 점이었다. 그리고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아이템인 게임은 얼마전 방영했던 '로즈마리'에서 사용했던 식상한 아이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