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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을 바라보는 차가운 눈

자신을 낮추는 미덕[유재석]

2004.03.08 18:10

TOTO 조회 수: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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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처음 나에게 각인된 것은 군에 있을 때 토요일 오후에 했던 '스타 서바이벌 동거동락'이라는 프로그램의 사회자를 맡았을 때였다. 데뷔 후 거의 10여년간 무명 코미디언이었던 그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단번에 정상급 코미디언으로 거듭났고, 덩달아 이 프로그램 역시 주말 시청률 수위를 차지하는 성과를 보였었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주말이면 거의 항상 볼 수 있는 위치의 그가 되었다.

그의 가장 큰 특징은 억지 웃음을 끌어내는 코미디언이 아니라는 점이다. 항간에는 가장 재치없는 코미디언으로 통하기도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는 손꼽히는 재치를 소유한 코미디언이다. 어느 순간, 어느 상황에서도 그는 다른 이들처럼 굳이 위기를 모면하려 애쓰지 않는다. 대응할 수 있으면 위트있는 말로, 대응할 수 없는 난감한 상황이면 그 순진한 웃음으로 솔직히 답변한다. 코미디언이면 분명 순발력 있는 언어로 대중을 웃길 수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 혹은 그들만의 강박관념을 그는 솔직함으로 대처한다. 그리고 시청자는 그런 그의 모습으로부터 오히려 더욱 순수하고 즐거운 웃음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큰 그의 장점은 다른 코미디언이 남을 깎아 내리면서 웃음을 유발하는 반면 자신을 낮추어 웃음을 유발하는 것이다. 현재 최고의 대우를 받는 신동엽이나 강호동 등의 모습을 보면 다른 출연자들의 치부를 한없이 물고 늘어져 그들이 당황하는 상황을 연출하여 웃음을 유발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유재석은 스스로 단점을 실토하거나, 다른 이들로부터의 공격을 받는 과정에서  이를 유쾌하게 넘어가는 경로를 통해 웃음을 준다. 자신을 낮추는 미덕, 이는 항상 상대방을 깎아 내리는데 열중해 있던 TV속에 던져준 유재석의 신선한 바람이었고 이 때문에 나는 유재석을 볼때면 항상 유쾌해진다.

보면 그저 아무 이유없이 유쾌해지는 유재석이지만 최근에는 과도한 출연 때문에 그의 매력이 쉽게 질려버리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앞선다. 최고의 위치에 있을 수록 자신의 여력을 담아놓는 여유가 있어야 그 위치를 유지할 수 있는 법이니 말이다. 오랫동안 그가 선사하는 유쾌한 웃음을 즐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