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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파 드라마의 正道[大長今]

2004.03.24 13:53

TOTO 조회 수:8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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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월, 화 밤 9:55
방송 : 2003. 09. 15 ~ 2004. 03. 30
연출 : 이병훈
극본 : 김영현
출연
이영애, 지진희, 홍리나, 임호, 양미경, 견미리, 여운계, 박찬환, 김혜선, 임현식, 금보라, 이희도, 박정수, 박은혜, 이잎새, 이자혜, 한지민, 김민희, 이세은, 전인택, 조경환, 박정숙, 김여진, 신국, 맹상훈


공중파 드라마란 어떠해야 하는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혹자는 기존 드라마의 흥행요소(신분을 초월한 사랑, 눈요깃거리 아이템, 선악대결구도 등등)를 모두 끌어다 조합해놨을 뿐이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대장금이 보여준 것은 그 이상이었다.

보통 드라마는 초반의 빠른 사건전개, 그리고 중반 사건의 진행, 극적인 결말로 이루어진다. 이 때문에 드라마 초기에는 재미로 빠져들다가 중반즈음에 지루해지고, 결말에 다시 재미있어지는 구도가 보편적이다. 지금껏 이러한 공식이 먹힌 것은 한번 보기 시작한 것은 끝까지 보게 되는 드라마의 성격 때문이다. 초반의 빠른 전개를 재미있게 감상한 시청자들은 계속 그 드라마에 붙잡아 둘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대장금은 그런 기존의 공식을 뒤엎었다. 초기 어머니와 장금의 갈등에서 장금과 한상궁, 최상궁 일파와 장금일파, 그 후에는 장금과 기존제도의 갈등, 임금과 장금의 갈등 등 드라마가 진행대는 내내 극적인 갈등구조가 계속 전개되어 갔다. 이런 큼지막한 갈등에 포함된 여러 에피소드를 생각한다면 드라마는 매회 극적인 에피소드와 함께 진행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기존의 드라마처럼 한번 급박하게 진행된 후에 축 늘어지는 것이 아닌, 계속 시청자에게 극적 긴장감과 함께 재미를 줄 수 있었고 결국 50%에 육박하는 경이적인 시청률을 기록할 수 있었다. 중종때 총애를 받던 의녀 장금이라는 단편적인 기록 만으로 이처럼 극적인 인생 하나를 창조해낸 극작가의 창조성을 매회 보면서 감탄했다.

또한 한편으로 말이 많았던 캐스팅. 장금의 역에 굳이 이영애를 선택했어야 하는가의 의문은 어떤가. 극 전체적으로 봤을때 장금은 밝고 긍정적인 사고와 함께 굳은 신념을 가진 여인이었다. 이러한 이미지만 놓고 본다면 조금은 어둡고, 차분한 이미지를 소유한 이영애의 캐스팅이 딱 맞아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시청자들은 이영애가 장금의 이미지에 맞고 안맞고를 본 것이 아니라, '대장금'을 통한 그녀의 변신에 열광했었다. 덤벙거리고, 고집세고, 밝은 역할로의 변신을 꾀한 이영애는 기존의 이미지를 과감히 탈피했을 뿐더러, 진일보한 연기력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많은 사람들 말대로 김현주나 박선영도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극중 장금의 무게까지 고려한다면 이영애의 캐스팅은 오히려 성공적이지 않았나 싶다.

'허준과 비슷하다'는 것 또한 항간에 많이 나오는 비판이다. 이는 같은 연출가의 작품이니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그러나 분명한 것은 허준에서는 볼 수 없었던 영상미 풍부한 장면(바닷가를 배경으로 한 장면이나, 한상궁이 쫓겨날 때 원거리에서 잡은 장면 등등)을 대장금에서는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병훈PD 연출의 특징은 '무리가 없음'이다. 다른 젊은 연출가들 처럼 눈에 띄는 장면은 그리 없지만 극 전체적으로 봤을때 어색한 부분 없이 드라마의 특징을 잘 살리는 '교과서적'인 연출을 하는 연출가다. 허준, 대장금 모두 그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을 뿐이다. 물론 조연으로 똑같이 임현식을 캐스팅 한 것은 아쉽지만 말이다. '다모'에서 기술을 통한 화려한 장면을 볼 수 있었다면 '대장금'으로는 정통적인 명장면을 볼 수 있었다고 하겠다.

마지막으로 감동을 받은 것은 '드라마의 힘'이다. 내가 드라마 연출가를 꿈꾸는 이유도 그 '드라마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너무나 각박하고 어려운 현실, 그러나 시청자의견란에는 '대장금을 보고 어려움을 이겨낼 힘을 얻는다'는 의견이 끝도 없이 올라오고 있다. 드라마속 인물들을 보면서 자신의 어려운 현실을 바꿀 의지를 얻는 다는 것. 이는 드라마가 뿜어낼 수 있는 최고의 힘이 아닐까? 그리고 호주제 등으로 남녀평등이 또한번 이슈화 된 이때에 여성, 그것도 궁궐의 여성이 아닌 평민의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의 탄생은 그 자체로 의의가 있다. 기존 드라마에서 여자 주인공의 성공은 우연한 기회거나 아니면 남자에 기댄 성공이라면 '대장금'은 순수한 그녀의 신념과 노력을 통한 성공이었기에 기존의 드라마와는 다르게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불륜 등 사회의 가치관과 동떨어진 이야기들이 난무하는 지금의 드라마들 속에서,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전개만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예를 보여준 '대장금'. 공중파 드라마가 가야할 길을 알려준 기념비적인 드라마가 아닐까 한다. 반년동안 밤마다 수많은 사람들을 배고픔에 떨게 하고, 장금의 미소와 울음에 웃고 울게 했던 시간을 보내야 하는게 아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