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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을 바라보는 차가운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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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독 : 김기덕

나에겐 김기덕의 세번째 영화다. 첫번째 영화였던 '섬'에서는 그저 색다른 영상미와 파격적인 이야기 뿐이었고, 두번째 '해안선'에서는 미남 장동건이 아닌 배우'장동건'과 김기덕만의 색다른 인간의 묘사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 영화에서 김기덕은 그저 담담히 '인생'에 대해 논하고 있었다. 자극적인 묘사로 무엇을 각인시키려는 노력도, 개성 철철 넘치는 배우의 연기도 없었다. 마치 담담한 수묵화를 한편 보는 느낌이랄까?

만물이 소생하는 봄, 갖가지 생물이 몸에 묶인 조그마한 돌덩이 때문에 죽는 것처럼 인간 역시 온갖 번뇌를 지니고 인생을 시작하는 생물일지도 모른다. 그런 번뇌의 씨앗은 여름에 모든 생물의 성장이 절정에 다다르는 것과 같이 성장한다. 그리고 그 번뇌를 따라 흘러갔던 세속에서 모든 것을 잃고 돌아온다. 그 뒤 찾아오는 겨울. 마치 죽어있는 것과 같은 세상에서 다음을 향한 조그마한 움직임이 시작되는 것, 이것이 김기덕이 그리는 인생이다.

요즘의 대부분 영화처럼 요란스러운 에피소드는 없지만 지금껏 김기덕 영화의 특징처럼  지루하지는 않다. 그 이유는 아마도 영화를 보면서 동시에 관객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인생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매력 때문일 것이다. 반야심경, 그리고 한용운님의 시에서도 등장했었던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는 말을 끊임없이 되뇌이게 했다. 내가 살고 있는 삶 역시 한갖 공허한 번뇌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닌가. 그토록 움켜쥐려 하건, 아니건 결국 다시 돌아오고 또 돌아오는 봄처럼 인생 역시 그러하다면 우리의 삶은 어쩌면 아무 의미없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

호수위에 고요하게 떠 있는 절, 오직 조그마한 나룻배 이외에는 통할 수 없는 세상. 그런 세상속에서의 삶이 전혀 불행할 것 같지 않은 느낌을 전해줬다는 것 만으로 영화는 충분히 가치가 있다. 영화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한줄기 스산한 바람을 맞은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난 지금 스물 여섯번째 봄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