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한국어

시선

주변을 바라보는 차가운 눈

사과나무

2004.10.16 23:17

이현국 조회 수:635

밥을 먹다가 냉장고를 흘깃 보았다. 냉장고 전면에는 사과나무 모양의 그림이 하나 있었고 그 안에 빨간 사과가 한 알 달려 있었다.
"엄마, 저건 뭐예요?"
"저기에 사과 다 채우면 사은품 준다더라. 오천원어치 살 때마다 사과 하나야."
그러고 보니 사과나무의 줄기 아래엔 수퍼의 상호가 적혀 있었다.

예전에 학교에서 포도알을 모아 제출하던 생각이 났다. 다 모아 제출하면 고작 선생님으로부터 색연필 한 자루 받는 것이었는데 왜 그리 악착같이 모았는지 모르겠다. 다만 기억나는 것은 받는 색연필보다는 포도알을 하나하나 모아가는 과정이 즐거웠다는 것이다. 빈 공간을 한 칸씩 채워가는 즐거움. 그 즐거움 때문에 난 악착같이 숙제를 하고 선행을 했다. 어머니도 그런게 아닐까? 동네 수퍼에서 무슨 대단한 사은품을 줄 리 만무하다. 다만 수퍼 한 번 들를 때마다 덤처럼 얹어주는 사과알 한 두개. 그 사과로 사과나무를 채워가는 재미 때문에 붙이시는 것은 아닐까?

이미 직장이 있는 친구들의 대화가 생각난다. 평범한 직장인이 억대 재산가 되는 길은 로또, 증권, 투기 밖에 없다고. 단순히 저축으로는 절대 불가능하다고. 직장을 다녀보지 않아서 월급으로 부자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난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작은 돈이나마 아껴서 모으는 재미는 안다. 부모님이 보내주신 한 달 용돈. 조금씩 아껴 몇만원, 몇십만원을 이루는 재미. 물론 모은 돈으로 사고 싶던 물건 하나 사면 이내 사라지긴 하지만 조금씩 통장에 돈이 쌓이는 즐거움에 더욱 돈을 아껴 썼던, 그래서 재미있었던 기억은 난다.

지금, 그런 재미로 산다는 것은 어찌 보면 현실에 뒤떨어져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10억 만들기 카페가 유행하고, 퇴근길에 로또 구입하는 것이 일상 풍경이 되어버린 지금. 돈을 아껴 쌓는 재미 보다는 마치 뻥튀기 기계에서 나온 강냉이처럼 부풀려 버리는 재미만 횡행하고 가치있는 것으로 여긴다. 뛰어난 재테크로 자산을 마구 불리는 것이 미덕이지, 저축은 이미 미덕이 아닌 사회. 그것이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공간이다.

냉장고의 사과나무가 흐뭇했던 것은 왜였는지 모르겠다. 세상의 흐름을 거부하고 우직하게 자신의 뜻을 펴고 있어서였는지, 아니면 사과나무 한 그루 채워오면 사은품 준다는 말에 그걸 굳이 들고 오신 어머니의 순박함 때문인지. 다만 사과 한 알이 박힌 사과나무가 계속 내 눈길을 이끄는 것을 어찌 할 수 없을 뿐이었다.

- 스터디 작문시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