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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주변을 바라보는 차가운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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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KBS2 수, 목 밤 9시 55분
극본 : 박은령
연출 : 김평중
출연 : 오연수, 김영호, 허영란, 오지호, 김여진, 김민희, 김일우, 최란, 김유석, 반효정, 김성원, 변희봉

수요일, 목요일 밤 열시. MBC에서 높은 완성도와 참신한 영상으로 환호성을 받고 있는 '아일랜드'가 젊은이들의 담담한 사랑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사이, KBS에서는 유치찬란한 아줌마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하지만 불륜, 이혼, 성공담...... 온갖 진부하고 유치한 코드가 뭉쳐있는 이 드라마에 '아일랜드'는 소리 없이 사그라들었다. 유치찬란한 아줌마 얘기는 급기야 시청률 40%에 육박하면서 '대박'을 터뜨리고 종영했다. 뭔가 이상하다.

톱스타급 캐스팅도 없었다. 오랜만에 브라운관 나들이를 나온 오연수, 만년 조연급 배우인 김영호, 허영란, 오지호. 별볼일 없는(?) 배우들이 엮어가는 진부한 이야기. 이러헥 외형상으로는 아무런 흥행조짐이 없는 드라마가 '두번째 프러포즈'였다.

하지만 약점들로만 점철된 이 드라마 속엔 너무나 강력한 무기가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리얼리즘이었다. 이미 '앞집 여자'에서 우리나라 아줌마를 리얼하게 그려낸 경험이 있는 작가 박은령. 아줌마인 그녀의 손으로 그려진 '두번째 프러포즈'는 또한번 우리나라 여성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지금까지 우리가 보고 들어온 불륜과 이혼에는 선과 악이 극명하게 대립되어 있었다. 조강지처를 버리고 바람을 피우는 남편은 분명한 악이었으며 버림받은 조강지처는 또한 말할 것 없는 선이었다. 혹은 남편이 바람 피울 수밖에 없도록 행동한 부인은 악이었으며 바람을 피운 남편은 나쁘지만 동정해 줄 수 있는 선의 존재였다. 그리고 아이를 새로이 맞게 된 새엄마는 보편적으로 아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악녀였다. 지금껏 우리가 접해 온 이야기들은 대개 이렇다.

하지만 '두번째 프러포즈'는 다르다. 초등학교 때부터 알아 온 지금의 아내와 덜컥 결혼은 했지만 뒤늦게 찾아 온 불같은 사랑에 고민하는 민석(김영호 분). 남들처럼 알콩달콩한 신혼생활을 못하는게 불만이긴 하지만 남편과 아이들을 이해하려 끊임없이 노력하는 연정(허영란 분) 모두 '잡아 족칠 못된 인간'으로만 그려지지는 않는다. 본연의 모습과 사회의 도덕률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는 외로운 인간들일 뿐이다. 그들의 이러한 모습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함부로 욕할 수 없다. 이처럼 등장인물을 단순화 시키지 않고 온갖 고민을 지닌 현실적인 모습으로 그려낸 점. 그것이 아마도 시청자들로 하여금 이 진부한 이야기의 드라마를 외면하지 못하게 한 이유인 듯 하다.

이혼녀의 힘든 삶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것 역시 이 드라마가 갖는 현실적인 시각 덕분이다. 세상 물정 모르고 살림만 하던 주부가 이 세상을 헤쳐가기란 그리 녹록치 않은 일이다. '결혼하고 싶은 여자'의 변정수 처럼 세련되고 잘나가는 이혼녀가 과연 흔할까? 사기를 당해 받은 위자료를 모조리 날리고, 식당일, 호텔의 잡일을 하며 셋방을 전전긍긍하는, 그리고 경제력이 없다는 이유로 아이들마저 포기해야 하는 미영(오연수 분)의 모습은 아마도 이 시대의 이혼녀의 삶고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아픈 현실을 공감하며 위로를 던져주던 드라마는 미영의 성공기로 마무리 지으며 달콤한 판타지를 던져준다. 그 과정이 허무맹랑하기는 하지만 '대장금'에서 역경을 헤쳐나가는 장금이가 많은이들에게 희망을 던져 준 것처럼 우리의 아줌마 역시 힘든 현실을 딛고 일어섬으로써 경제 한파에 얼어 붙은 우리를 조금은 녹여주고 있다.

단지 아이들을 되찾기 위해 시작되었던 아줌마의 억척스런 삶은 화려한 전원주택에서 모두 함께 어울려 사는 모습으로 끝났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서 단지 현실이 망가진 아줌마로 만들었을 뿐이지, 밖에서는 당당한 여성일 수 있는 이 시대의 여성을 그리고 싶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말은 전혀 허황된 말이 아니다. 수많은 아줌마들의 빡빡한 삶은 여전히 눈 앞에 그대로지만, 그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조금이나마 이 드라마가 줄여줬다고 하면 오버일까? 이 시대 아줌마의 반란, 그리고 그녀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의 반란을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