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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뭇한 민족주의 교본[화인열전 1, 2]

2005.07.11 17:32

toto 조회 수: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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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 : 1권 <내 비록 환쟁이라 불릴지라도>, 2권 <고독의 나날속에도 붓을 놓지않고>
유홍준 지음, 역사비평사

시스티나예배당 천장에 펼쳐진 <천지창조>, 벽면 전체를 차지하고 있던 <최후의 심판>을 직접 접했을 때의 희열, 루브르에서 <모나리자>를 봤을 때의 감동이 여전히 생생하다. 하지만 미술에 조예가 깊지 않은 내가 이들 작품에서 무언가를 느꼈기에 그토록 인상이 깊었을 리 만무하다. 다만 책에서, TV에서, 잡지에서 무수히 접했던 작품들이 내 눈 앞에 펼쳐져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나를 오랫동안 감상에 젖어 있게 했을 뿐이다. 대한민국에서 평범하게 성장한 나의 경우를 비춰보면 아마도 대다수 보통사람들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리라. 서구 유수의 대가들, 다빈치나 미켈란젤로, 고흐, 세잔 등의 이력이나 대표작은 줄줄 꿰면서도 정작 우리의 대가(大家)는 낯설기만 하다. 기껏해야 교과서에서 접했던 안견의 <몽유도원도>나 정선의 <인왕제색도> 정도? 그나마도 실제 작품과 그 이름을 제대로 연결하지 못하는 이들이 태반일 것이다.

제대로 아는 것 없이 맹목적으로 ‘대한민국’을 외치는 이들이 많은 우리나라. <화인열전>이 소중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정선과 김홍도가 훌륭한 화가였다는 사실, <인왕제색도>와 김홍도의 많은 풍속화가 유명하다는 사실만 알 뿐 그들이 왜 훌륭한 ‘화인(畵人-작가는 이들이 현대적 개념의 ‘화가’라는 말보다는 시인이나 문인처럼 사람인(人)을 붙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해 이렇게 지칭했다.)’이었는지, 그 그림들이 어떤 의미가 있기에 유명한지 모르는 이들에게 이 책은 친절히 답해주고 있다. 이 책은 연담 김명국, 공재 윤두서, 관아재 조영석, 겸재 정선(이상 1권), 현재 심사정, 능호관 이인상, 호생관 최북, 단원 김홍도(이상 2권) 이상 당대를 풍미했던 여덟의 대가를 각각 연대순으로 그들의 삶과 작품을 병치하여 설명하여 소개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치 기전체 서술의 ‘열전(列傳)’편처럼 말이다.

이들 여덟 명 중 우리에게 익숙한 화인은 정선과 김홍도 정도다. 이들이 널리 알려진 것은 분명 후대 역사가들 덕택일진데 참혹한 일제치하 36년을 겪은 우리에게 외세를 그대로 따르지 않고 고유의 화풍을 발전시킨 이들이 다른 누구보다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였을 것이다. 진경산수화풍을 완성하고 풍속화를 새로운 경지로 끌어올린 두 화인이 다른 이들보다 더욱 강조되고, 이는 우리가 다른 어떤 화인보다 이들에게 친숙함을 느끼게 된 이유다. 그리고 <화인열전>의 장점은 바로 이와 같은 현대의 일방적인 기준을 따르지 않은 데에 있다. 후대에 만들어진 새로운 기준(우리 고유의 독창성을 발전시켰는가)에만 의지하지 않고 오직 예술적 경지만으로 여덟 명의 화인을 선별하였기에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당대의 화풍과 그 다양한 경지의 화인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중국 남종화풍을 받아들여 당대 조선 뿐 아니라 중국에까지 명성을 떨쳤던 현재 심사정이나 남종화의 고고한 맛을 한껏 끌어올린 능호관 이인상이 그 여덟에 포함될 수 있었던 것도 작가의 이런 객관적인 기준 덕분이다.

그리고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은 풍부한 고증에서 비롯되는 생동감이다. 시(詩)나 서(書)와는 달리 중인들이 빛났던 장르, 상대적으로 그림을 미천하게 여겼던 조선시대였기에 자료가 그리 많지 않음에도 화인과 관련된 각종 평론집을 인용하여 당대를 살아간 화인의 일생을 생생히 그려내고 있다. 작품과 더불어 세간의 평을 읽으며 화인의 일생을 따라가고 있노라면 그 생생한 간접경험에 푹 빠져들게 된다. 뿐만 아니라 부록으로 수록된 평론집 번역은 그 맛을 배가시킨다.

물론 아쉬운 점도 없지 않다. 전체적으로 작가의 주관이 많이 개입되다보니 수록된 작품을 오롯이 감상하기 힘들다. 독자 스스로 작품을 감상하기 전에 이미 작가가 작품의 뛰어난 점과 부족한 점,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감상까지 상세히 설명하다보니 독자는 ‘그런가보다’ 생각하며 그림을 보아 넘기게 된다. 작품에 대한 세간의 평 정도만 간략히 실었으면 적당했으리라 생각한다. 게다가 한국화는 알다시피 ‘여백’이 백미이니만큼 가능한 큰 도판으로 실었으면 아쉬우나마 그 맛을 조금 더 생생히 전달할 수 있었을 텐데 분량의 압박때문인지는 몰라도 전체적으로 작은 도판이 많은 점 또한 아쉽다.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처럼 접는 페이지를 이용하는 등 큰 도판을 이용했으면 어땠을지...... ‘부감법’, ‘부벽준’ 등 한국화와 관련된 여러 용어를 간략하게나마 설명한다면 문외한인 독자들도 더욱 쉽게 이 책을 즐길 수 있었으리라는 아쉬움 또한 남는다.

이 책을 읽은 후의 느낌은 하나다. ‘직접 보고 싶다’. <화인열전>은 그동안 우리의 관심 밖이었던 한국화(계속 ‘한국화’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이 용어가 옳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동양화’라는 용어보다는 최근 자주 사용되는 용어이기에 일단 사용하고 본다. 나 역시 이 분야는 문외한이기는 마찬가지니 말이다.)를 가장 재미있게, 부담 없이 우리의 관심 속으로 들여놓을 수 있는 조력자임에 틀림없다. 물론 그 자체로도 훌륭한 ‘열전’이지만 말이다. 조선 후기의 예술에 워낙 막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기에 작가가 따로 떼어 펴낸 <완당평전>(완당은 추사 김정희의 또 다른 호)을 읽어봐야겠다. 추사체, 금석문, <세한도>. 내가 김정희에 대해 아는 것은 달랑 이 세 가지 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