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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착오[돌아온 싱글]

2005.07.27 09:14

TOTO 조회 수: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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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 SBS 수, 목 밤 9:55
연출 : 장기홍, 진석규
극본 : 한은경
출연 : 김지호, 김성민, 조미령, 정선경, 손현주, 강경준, 이세영, 안석환, 김세준, 한나연, 이세영, 김태윤

90년대 초, ‘트렌디드라마’라는 새로운 분위기의 드라마가 처음 등장했다. 당대 최고의 미남미녀 배우들, 삼각관계, 도시적 영상미만 갖춘다면 이야기가 치밀하지 않아도, 그다지 톡톡 튀지 않아도 시청자에게 ‘먹힐 수 있었다’. 하지만 10년의 시간은 이들을 진화시켰다. 이야기의 구성이 치밀하거나, 처절할 정도로 현실을 실감나게 담아내거나, 화려한 캐스팅이 뒷받침되거나, 통통 튀는 색다른 소재를 다루지 않는다면 시청자에게 바로 외면당하기 일쑤다. 그리고 <돌아온 싱글>은 90년대 트렌디드라마 공식을 이용하여 2005년, 그 살벌한 드라마 전장에 상륙한 지극히 불행한 작품이었다.

제작진은 이미 ‘결혼의 실패를 맛 본(물론 주인공인 금주는 남편과 사별한 경우지만)’ 이들의 사랑이야기라는 점을 통해 <돌아온 싱글>을 기존 드라마와 차별화한다. 맞다. 그 점에 있어서는 기존 트렌디드라마와 어느 정도 차이는 있다. 하지만 그 차이가 드라마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 기존 드라마에서도 여주인공이 사랑의 아픔을 겪고 새로 다가오는 사랑에 대해 소극적인 경우는 무수히 많았다. <돌아온 싱글>의 가장 큰 차이로 부각시킨 ‘결혼의 실패’는 기존 트렌드드라마에서 여주인공들이 ‘새로운 사랑을 주저하는 이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작품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요소가 기존 드라마 공식의 한 요소로밖에 사용되지 않으니 <돌아온 싱글>은 ‘결혼 경험이 있는 남녀’가 펼치는, 우리가 90년대부터 지금까지 숱하게 접해 온 진부한 사랑이야기에 불과했다.

밝고 착한 금주(김지호 분), 악녀 혜란(조미령 분), 이 둘 사이를 오가는 민호(김성민 분). 사건 하나로 오해가 생기고 사건 하나로 오해가 풀리는 우연적 에피소드의 반복, 가난녀와 부자남의 신데렐라 이야기, 모질기만 한 악녀의 훼방. 이 작품을 연출한 장기홍 PD가 90년대 말에 연출한 <미스터Q>나 <토마토>, 그리고 지금까지 있어온 무수한 이야기들과 차이는 거의 없다. 차라리 결혼에 실패한 사람들의 삶을 치열하게, 너무나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돌아온 싱글>이 바라보는 이혼남, 이혼녀들은 너무나 피상적이다. 그들의 아이들이 등장한다는 점 이외에는 주인공들의 ‘과연 사별, 이혼을 경험한 사람들인지’ 알 수 있는 단서는 없다. 금주는 순정만화 여주인공처럼 죽은 남편을 몇 년이 지나도록 그리워하고, 혜란은 민호를 차지하기 위해 결혼과 이혼을 했다. 현금(정선경 분)은 이혼을 경험하고, 자신의 아이와 떨어져 사는 처지임에도 돈 많은 남자를 만나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이토록 피상적으로, 비현실적으로 그들을 그려내니 이야기는 현실감도, 재미도 없다. 리얼리티를 상실하고, 엉성한 구성으로 이야기를 진행시켰던 이야기. 90년대라면 어쩌면(물론 힘들겠지만) 먹혔을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드라마와 함께 진화해 온 지금의 시청자들에게는 ‘장난 하냐?’일 것이다.

물론 작품이 ‘괜찮아 질 여지’는 있었다. 갑자기 나타난 딸(이세영 분)에 당황한 민호, 무뚝뚝한 그가 딸과 조금씩 가까워지는 과정을 긴 호흡으로 그려냈으면 마치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처럼 한 인간이 조금씩 변화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또 하나의 재미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드라마는 민호와 금주의 뻔한 러브스토리에만 초점을 맞춘 나머지 이 어색한 부녀의 사이를 사건 하나(육상대회 때 운동화를 가져다주는)로 금세 화기애애하게 만들어버렸다. 뿐만 아니라 금주의 복잡한 가족사(부모님의 이혼, 어머니가 죽자 재혼했던 아버지에게 돌아옴)를 통해 우리 사회의 ‘이혼’에 대해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할 수 있었음에도 이는 금주가 재혼을 기피하는 이유로밖에 쓰이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김지호를 다시 볼 수 있었던(다른 여배우들은 아줌마 되어 돌아오면 연기력이 급상승되어 있던데 김지호는 예전 그대로다. 어설픈 연기력 그대로......), 그리고 정선경의 연기 변신이 재미있었던 작품이었지만 드라마로서는 거의 최악에 가까운 작품이다. 주연배우들의 내공 부족, 대본의 이야기 구성 엉성, 연출 역시 이야기 이어가나기 급급했던. 시청률 한 자릿수는 비단 ‘삼순이 열풍’ 때문만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