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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주변을 바라보는 차가운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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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생,  <가을동화>, <장화,홍련>, <어린신부>, <댄서의 순정> 등 출연

‘블루오션(blue ocean)’은 현대 사회의 화두 중 하나다. 고도로 전문화되고 경쟁이 치열해진 사회. 그래서 그 어떤 능력보다도 블루오션, 경쟁이 거의 없는 새로운 시장을 찾아내는 안목을 높이 평가한다. 왜냐하면 블루오션을 찾아내고 거기에 진출하는 것이 성공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온라인 동호회 서비스를 바탕으로 벤처기업의 성공신화를 쓴 다음커뮤니케이션이 그랬고, 젊은이를 대상으로 트로트를 불러 스타로 발돋움한 장윤정도 그러하다. 그런 면에서 ‘국민 여동생’으로 불리는 문근영 역시 블루오션을 공략해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섹스어필에 혈안이 되어 있는 여자 연예인들 속에서 그녀의 순수하고 귀여운 이미지는 유독 빛났기 때문이다.

그녀를 처음 본 것은 <가을동화>에서였다. 미인형 얼굴은 아니지만 커다란 눈과 동글동글한 이목구비는 순수함과 귀여움을 충분히 갖췄다. 게다가 뛰어난 연기력과 느릿느릿하지만 또랑또랑한 말투. 마치 지금까지 몇 번 마주쳤을 것 같은 친근함과 한 없이 보살펴주고 싶은 여림을 갖고 있는 배우. 그래서 난 송혜교가 연기한 후반부보다 그녀가 등장했던 전반부에 흠뻑 빠져들었었다. 그러나 단지 그런 몇 개의 이미지만으로 그녀가 ‘국민 여동생’이라 불릴 정도로 유명해지고, CF 시장을 휩쓸며 대스타로 발돋움 한 현재를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 아역으로 온 국민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던 배우는 이전에도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미지만으로, 그리고 얼굴 생김새만으로 이재은, 김민정 등이 그녀보다 뒤진다고는 결코 볼 수 없다. 하지만 그녀들과 문근영이 갖는 이름값의 무게는 지금 차이가 난다. 왜일까?

90년대, 심은하 등장 이후 여자 연예인을 대표하는 코드는 청순함이었다. 고현정, 강수지, 명세빈 등 심은하의 뒤를 이은 연예인들 모두 청순한 이미지를 무기로 하여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고소영, 전지현의 등장은 그 대표 코드를 청순함에서 섹시함으로 순식간에 바꿔 놨다. 이효리, 한채영, 채연 등은 늘씬한 몸매와 도발적 이미지를 통해 최고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섹시하다’는 말은 여성들에게 보내는 최고의 찬사가 되었다. 이 흐름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유니, 현영, 성은 등 모두가 자신의 섹시함을 강조하기 바쁘다. ‘섹시함’은 이 시대 최고의 ‘레드오션’이다.

그 속에서 커다란 눈망울로 눈물을 흘리고(가을동화), 사랑을 아직 모른다며 더 기다려달라는(어린신부) 귀여운 여배우가 탄생했다. 너도나도 큰 가슴과 잘록한 허리를 강조하기 바쁜 마당에 교복을 입고 큰 눈망울로 우리를 응시하는 그녀가 눈에 띄지 않을 수 있었을까? 데뷔한 지 5년이 지났지만 그녀는 여전히 5년 전 <가을동화>의 은서 그대로다. 아역탤런트 출신이라는 압박 때문에, 그리고 섹시함의 물결에 밀려 자신들의 아역 이미지를 벗어내기 바빴던 이재은, 김민정과 문근영의 가장 큰 차이는 이 점이다. 채 성인도 되지 않은 나이에 이재은은 <노랑머리>에서, 그리고 김민정은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에서 벌써 과거의 귀여운 이미지를 벗기 시작했다. 그리고 더 가능성이 있었던(내가 생각하기에)언니들이 박차고 나가 블루오션으로 남을 수 있었던 ‘귀엽고 순수한 여동생’의 이미지는 자연히 문근영의 영역으로 넘어왔다.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그녀는 남들이 떠나기 급급했던 블루오션을 찾아 성공했다.

난 그녀가 그 블루오션을 오랫동안 지켰으면 좋겠다. 40세가 넘어서도 전 세계의 ‘귀여운 여인’ 대명사로 자리 잡았던 맥라이언처럼 말이다. 더 나아가 트렌드를 좇기에 급급한 우리 연예계에 개성을 살릴 줄 아는 풍토를 정착시키는 데까지 그녀의 행보가 영향을 미친다면 더욱 바랄 것이 없다. 만일 다른 배우들처럼 그녀 역시 천부적인 이미지를 벗고 트렌드를 따라 그저 그런 배우로 살아간다면 너무나 아쉬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