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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을 바라보는 차가운 눈

엘리베이터

2006.06.30 08:14

이현국 조회 수:1417

어쩌면 엘리베이터는 현대 문명의 어트리뷰트인지도 모른다. 차가운 금속으로 이루어진 표면, 90도의 각을 이루지 않은 곳이 없는 모양, 층과 층을 가장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는 수단이라는 존재 의의. 엘리베이터를 이루고 있는 모든 것은 신속성, 냉철함, 분명함을 상징하는 듯하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빈틈없는 엘리베이터 속에서도 인간은 숨을 쉰다.

단상 하나. 엘리베이터 안에는 보통 두 개의 픽토그램이 있다. '기대지 마시오'와 '손대지 마시오'가 그것인데, 딱딱하고 간결한 엘리베이터 속에 단순명료한 메시지 전달 수단이자 어쩌면 현대 사회의 특징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픽토그램이 붙여져 있는 것은 엘리베이터의 특성을 더욱 증폭시키는 꼴이다. 하지만 요즘 대부분 엘리베이터의 그 두 개 픽토그램은 '개폼 금지'와 '장풍 금지'로 바뀌어있다. 보통 누군가의 낙서에 의해 그렇게 바뀌어 있는데 그것을 볼 때마다 재미있어서 웃는 동시에 이유 없는 따뜻함을 느끼곤 한다. 너무나 반듯하고 차가워서 사람 냄새라곤 찾아볼 수 없는 좁은 공감에서 그나마 사람냄새를 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널리 쓰이는 픽토그램이어서 누구나 그 뜻을 아는 것이라면 한 순간이나마 재미와 따뜻함을 주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덕분에 개폼을 즐기는 사람과 장풍을 남발하는 사람이 준다면 더 좋은 일일 게다.

단상 둘. 예전에 박진영이 '엘리베이터 안에서'라는 곡을 발표했었다. 성행위를 연상시킬 정도의 가사여서 방송금지된 곡이긴 했지만 엘리베이터가 그만큼 '에로틱'한 장소임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될 수 있으리라. 실제로 영화, 드라마에서 두 남녀 주인공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키스하는 장면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뿐만 아니라 오락프로그램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엘리베이터는 '첫 키스의 장소', '키스하고 싶은 장소'로 수위를 차지했다. 이 시대의 가장 차갑고 반듯한 공간이 가장 인간적인 감정인 '사랑'을 불러 일으키는 장소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단상 셋. 심리학에서는 개인의 영역을 보통 주위 1미터로 상정한다. 그 안으로 친분이 없는 사람이 침입하면 심적 부담감을 느끼기 시작하고 친분이 있는 사람이라 해도 30센티미터 이내로 들어오면 마찬가지의 불안감을 느낀다고 한다. 개인의 사생활이 철저히 중시되는 현대 사회, 하지만 이 개인의 영역이 파괴되는 대표적인 공간이 엘리베이터다. 거리낌 없이 개인의 영역을 넘어설 수 있고 심지어는 살을 맞댈 수도 있는 공간. 체취를 숨길 수도 없으며 암모니아 가스를 분출하기라고 하는 때엔 동승한 모두를 지옥으로 끌고 갈 수도 있는 공간. 아무리 낯선 이에게도 'X층이요'라고 말만 하면 그 층을 눌러 주는 공간. 이런 엘리베이터의 특징을 현대사회와 상반된 '인간적'인 것이라 주장한다면 오버일까?

현대 사회에서 가장 차갑고 가장 반듯한 공간. 하지만 그 공간에서도 인간은 숨을 쉰다.
마치 콘크리트 바닥의 틈 사이에 난 이름모를 풀처럼.



<2005. 5. 13. 스터디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