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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주의자들을 향한 一擊[Sea inside]

2007.04.01 19:29

TOTO 조회 수: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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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독 :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주연 : 하비에르 바르뎀, 벨렌루에다, 로라 두에나스, 마벨 리베라

예전 인류학 책을 읽으며 씁쓸한 웃음일 지었던 적이 있었다. 인류학의 커다란 두 줄기, 문화 절대주의와 문화 상대주의. 전자는 말 그대로 문화에는 정도가 있어 진보 수준에 따라 일렬로 세울 수 있다는 이론이고 후자는 진보 수준을 가늠한 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이론이다. 문화를 진보 수준에 따라 일렬로 세운다? 진보의 기준은 무엇이며, 감히 누가 다른 이들이 수백년, 수천년간 쌓아온 문화를 평가한다는 말인가? 물론 서구의 지독한 자기중심주의에서 발로된 것이었겠지만, 그 학자들의 이론을 보면서 허탈함을 많이 느꼈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절대주의자'들처럼 쉽게 타인을 비교하고 평가한다. 그리고 쉽게 충고하고 조언한다. 고통에 빠진 이들에게 그것을 이겨내랍시고 다른 비슷한 처지의 이들과 비교를 하거나, 자살을 꿈꾸는 이들에게 무차별적으로 그들의 '나약함'을 비난한다. 세상에 실재하지 않는 '도덕'이나 '교훈', '종교'라는 커다란 잣대로 누군가를 쉽게 재단한다. 과연 이 세상에서 누군가의 처지에 완전한 공감을 이루는 존재가 있을까? 똑같은 유전자를 지니고 있는 일란성 쌍둥이조차 그들이 갖는 미묘한 차이에 따라 성격이 천차만별로 갈라지는데, 다른 유전자를 가진 사람에게서는 더 말 할 나위가 없다. 그래서 난 누군가에게 교훈적인 투로 말을 건네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겨우 '나라면 이렇게 혹은 저렇게 했을 것 같다'라는 말을 수줍게 건네는 것이 전부다. 누군가와의 완전한 '동감'은 존재하지 않고, 다만 '이해'만 존재할 뿐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며 내내 설렐 수 있었다. 그 어떤 상대주의자의 이론보다도 더욱 세련되게 '절대주의적 믿음'을 지닌 이들을 비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라몬(하비에르 바르뎀 분)은 젊었을 때의 사고로 전신불구가 된 장애인이다. 그리고 그는 법으로 금지되어 있는 안락사를 이루기 위해 국가에 소송을 내어 단숨에 전국적인 스타가 되었다. 언뜻 (절대 그의 입장이 될 수 없는) 우리가 보기에, 그는 그냥 그렇게 살아가도 괜찮을 것처럼 보인다. 자신을 친자식처럼 사랑해주는 형수와 가족들,  그리고 퇴행성 질환을 겪고 있기에 누구보다 서로의 처지를 공감할 수 있고 그래서 사랑에까지 이르게 되는 아름다운 줄리아(벨렌 루에다 분), 자신을 끔찍이 여기는 팬 로사(로라 두에나스 분), 그리고 너무나 서정적이고 포근한 마을.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라몬은 합법적인 죽음이 거부되자 결국 로사의 도움을 얻어 죽음을 택한다. 선원으로서 온 세계를 누리던 라몬, 그래서 그 누구보다 자유를 동경하는 라몬은 영화에서 그려지는 것처럼 꽤 근사하고 아름다운 삶 조차도 만족할 수 없었다. 그렇다. 그의 삶이 '살 만하지 않은가'라고 의문을 제시하는 우리들의 시각은 우리의 것일 뿐이지, 진정으로 '라몬'의 시각이 될 수 없다. 라몬을 설득하기 위해 찾아온 전신불구인 신부, 그러나 그의 전동휠체어는 라몬의 좁은 다락방에 다다를 수 없었기에 아래층 복도에서 라몬과 대화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신부처럼, 우리는 라몬의 집에 함께 있을 수는 있어도(비슷한 처지가 될 수는 있어도) 진정으로 라몬의 다락방에 다다를 수 없다(완전히 그와 같을 수는 없다). 그래서 그의 죽음을 절대적 잣대로 재단하며 만류하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일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라몬이 저런 아름다움에 만족하여 라몬이 삶을 택한다면 정말 실망스러울 것이라 생각했다. 상대주의적 시각을 강하게 품고 있는 나의 대변인이 되어 끝까지 그의 신념을 잃지 않기를 바랐다. 그리고 라몬은 나의 바람을 저버리지 않았다.

<콜래트럴>의 외형적 연기에 이어 내면연기까지 훌륭히 소화해 낸 하비에르 바르뎀의 연기가 정말 일품인 작품이다. 더불어 너무나도 우리 가까이 있지만 항상 잊고 있는 죽음에 대해 돌아보는 조그마한 여유도 덤으로 안겨주는 작품이다. 사고의 틀에 갖혀 답답함을 잊고 있는 이들에게, 그리고 바쁜 삶에 찌들어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을 갖고 싶은 이들에게 이 영화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