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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주변을 바라보는 차가운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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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억관 옮김, 노마드북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눈물'...이런 일련의 영화들을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꼈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아마도 눈물을 찔끔찔끔 흘리면서도 여드름을 기여코 짜낼 때의 쾌감과 비슷하리라. 나는 밟아보지 못한 '더 이상 추락할 수 없는 위치'의 인생, 그래서 나는 류승범의 추락과 죽음에 이르는 결말에 환희를 느꼈었다.

<라라피포>는 이런 이야기들의 일본판 처럼 느껴진다. 우리나라의 '나락 인생'이 거침없이 분노를 뿜어낸다면, 일본의 '나락 인생'은 조용하면서도 오타쿠적이다. 이웃의 섹스 소리를 들으며 자위를 하는 것이 생활의 낙인 프리랜서 기자, 길거리 여자를 포르노배우로 캐스팅하기 위해 입담을 펼치는 스카우터, 모녀 포르노배우, 자신에게 유혹당할 만 한 볼품 없는 남자들만 유혹하는 못난이...정말이지 '근엄한' 우리의 시선으로 보면 더 갈 곳이 없는 '막장인생'들의 이야기가 질펀하게 펼쳐진다. 우리가 꿈꾸는 '성공'이나 '행복'과는 가장 거리가 먼 사람들.

아마도 이 책을 읽으며 우리는 두 가지 즐거움을 느낄지 모른다.. '못난' 그들을 보며 '나는 이 정도면 됐지'라는 자족감, 또 하나는 등장인물들과 함께 정말 나락으로 떨어지는 쾌감. 나 역시 그 두가지의 쾌감을 느끼며 책장을 넘겼었다. 이보다 더 건전하고도 달콤한 마약이 존재할 수 있을까?

이 책의 구성이 신선하다. 옴니버스 형식이긴 하지만, 전편의 조연이 다음편의 주연이 되는 방식. 그렇게 돌고 돌아 결국 첫 편과 마지막 편의 등장인물이 같은 형식. 마지막 편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반전, 그리고 너무나 큰 충격을 안겨줬던 이 책 제목의 연원. 이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작가는 '세상은 그냥 살아지는 것'이라고 끈적거리며 말하는 것 같다.

그렇다. 여기 주인공들을 마음껏 비웃을 수는 없다. 적어도 이 책을 볼 정도로 경제적이고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인물들이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인생을 누가 뭐라 나무랄 수 있겠는가. '이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공중그네>와 <인더풀>로 나에게 '썩 괜찮은 작가'로 자리매김 했던 히데오. <라라피포>로 나는 열렬한 팬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