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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주변을 바라보는 차가운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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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독 : 김지훈
출연 : 김상경, 이요원, 안성기, 이준기, 박철민, 송재호, 나문희

보고 싶으면서도 보고싶지 않았다. 첫째는 현대사의 안타깝고 가슴아픈 부분을 돈벌이로 이용했다는 괘씸함 때문이었고, 둘째는 이미 매스컴에 너무 노출이 되어 있어 구미가 당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사건만 있고 서사가 없는 전형적인 장르영화', 즉 '왜?'인지를 이야기하지 않고 단순히 스펙타클한 면만을 보여주는데 초점을 맞춘 영화라는 평론가들의 비평 때문이었다.

'슬픈 역사적 사실을 다루면서도 그것이 왜인지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러한 비평을 보고 들으면서 '광주항쟁' 조차도 이제 '신기'하고 '스펙타클'한 소재로 이용되는 시대라는 것이 한심했다. 그리고 그 시대의 광주를 직접 겪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분명 잘못되고 비뚤어진 역사라는 사실을 분간하는 나는 그 돈벌이에 이용당하지 않겠다는 오기가 있었다.

그러나 <화려한 휴가>는 작품을 접하지 않은 채 갖는 선입견은 말 그대로 선입견일 뿐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알게 했다.

두 시간 내내 다리 한 번 꼬지 못했다. 의자에 편안히 기대지도 못했다. 너무나 앞자리여서 목이 뻐근했지만 그 뻐근한 목 한 번 주무르지 못했다. 숨을 편히 쉬기 곤란한 정도로 먹먹해진 가슴, 슬픔 보다는 안타까움과 미안함이 범벅되어 흐르는 눈물, 그리고 그 원흉을 단지 '발포' 명령을 내린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편안히 잘 살게 '예우'하고 있는 이 나라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서 우러나오는 한숨. 그래서 난 그 시간이 불편했다.

일면 평론가들의 비평은 일리가 있다. 80년의 광주를 모르는 이들에게 이 영화는 단순히 '전쟁영화' 정도의 스펙타클함을 갖춘 액션물일 수 있다. 크레딧이 올라가는 도중 '이거 진짜야?'라고 물으며 극장을 나서는 어린 대학생 커플들과 같은 경우에는 말이다. 평론가의 말대로 <혹성탈출> 조차도 외계인이 쳐들어 온 이유를 이야기해주는데 <화려한 휴가>에는 그러한 상세한 설명이 없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 '상세함'이 부족한 점이 마음에 들었다. 구구절절 나열하는 산문 보다는 미묘한 여운을 남기는 시구가 더 오랫동안 가슴에 남는 것처럼, 두 시간이라는 한정된 시간동안 박정희 때부터 시작된 군사독재의 역사와 70년대 말의 혼란을 이야기하다보면 이는 '영화'가 아닌 '교과서'에 지나지 않았으리라. 철저히 밝혀진 Fact(이 영화에 쓰인 사건들은 대부분 검증된 역사적 사실이다)들과 거기에 어우러진 평범한 광주시민들의 일상. 그것을 생생히 던져준 것만으로 이 영화는 그 소명을 다했다(80년의 광주를 널리 알리는 것이 감독의 주된 목적 중 하나였다면 말이다.) 적어도 지금 개봉한 전쟁영화가 없어 대신 이 영화를 보러 온 이들은 없을 테니.

대충 훑어보면 단순한 Fact의 나열 같지만 곳곳에 감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숨어있다. '왜 군인들이 쳐들어오느냐'라는 민우(김상경 분)의 물음에 김신부(송재호 분)는 '군부가 정권을 장악하는데 필요한 정당성의 확보'라고 설명하는 부문은 비평가들이 빠졌다고 이야기하는 '왜?'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다(빈약하기는 하지만). 또한 '사랑하는 광주시민 여러분, 우리는 최후까지 싸울 것입니다. 우리를 잊지 말아주세요'라는 신애의 외침은 감독이 관객에게 전하는 강한 메세지일 터이다.(이 장면이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다). 결국 감독은 서사, 메세지, 그리고 역사적 사건 중 후자에 방점을 찍었을 뿐이지 나머지를 말살한 것이 아니다. 적어도 이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의 요소들은 영화 곳곳에 배치해 두었다. 물론 80년의 광주를 모르는 이들이 이러한 요소들을 찾기는 힘들겠지만 말이다.

어찌보면 이러한 방식은 <그때 그사람들>의 경우처럼 '역사적 사실' 운운하는 지저분한 싸움을 피하고자 하는 비겁한 모습일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러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신들은 이를 알고 있습니까?'라고 물으며 여운을 주면서 영화를 마치는 세련된 방법일 수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여운과 구구절절하지 않음이 오히려 그 날의 광주를 되새기는데 더 알맞았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가 홀로 80년의 광주를 모두 어깨에 얹고 버거워 할 필요는 없다. 단지, 80년의 광주를 아는 이들에게는 아픈 역사를 되새기는 기회를, 모르는 이들에게는 우리의 부끄러운 역사를 접할 수 있게 되는 기회를 제공한 것만으로 <화려한 휴가>는 '화려한' 소명을 다 했다. 적어도 '역사'를 다룬 영화로서 말이다.

얼마 전 OCN에서 김상경이 영화를 홍보하는 멘트를 들었다.
'이 영화는 서민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광고해서는 안되었다. 상업성에 치여 어쩔수 없었다 하더라도, '이 영화는 안타까운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라고 했어야 했다. 80년 광주에 서민(일반 백성)은 없고 오직 양민(세력자의 침탈에 의해 시달림을 받는 자)만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권할만 한 영화다. 특히 이 사건을 '광주사태'라 부르는 모 대통령 후보에게는 '강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