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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주변을 바라보는 차가운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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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하준 지음, 이순희 옮김, 도서출판 부키

1. 자유무역이 보호무역보다 세계를 더 이롭게 한다.
2. 특허권 보호가 강화될 수록 개발욕구를 증대하여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3. 공기업은 민간기업에 비해 비효율적이다.
4.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은 게으른 국민성 때문에 가난을 면치 못한다.
5. 물가상승률이 낮을수록 성장에 도움이 된다.

위의 다섯가지 명제에 대해 '아니다'라는 의견을 가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리카도의 '비교우위론', 애덤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등을 달달 외며 공부했던 우리들에게 위의 명제는 항상 참이고 진리였다. 이는 현재 세계 경제학을 지배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은 물론, 부의 재분배와 평등을 부르짖는 진보적 시각의 경제학에서조차도 그렇다. 특히나 90년대 소비에트 연방과 동구권이 무너진 이후에는 더욱 그러하다. 이제 '경제학'은 '자유시장 경제학' 이외는 존재하지 않는 셈이 되었다.

작가는 우리가 갖고 있는 이러한 '경제학적인 상식'부터 흔들기 시작한다. 현재 세계 경제의 헤게모니를 갖고 여러 개발도상국에게 '신자유주의'를 강력하게 설파하는 국가들(미국, 서유럽, 일본 등)도 경제발전을 이루기 시작한 초기에는 지나친 보호무역과 배타적 경제정책으로 내적 기반을 다지기에 혈안이 되었음을 이야기하고, 이들이 세계에 압력을 행사하는 창구 역할을 하는 세계은행, IMF 등이 경제위기에 처한 국가에 강요하는 정책들이 얼마나 모순인지를 이야기한다. 지금 우리가 아프리카 국민들을 보는 시각과 1920년대 서구인들이 일본인과 우리나라 국민을 보는 시각이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또 민간기업보다 효율적이고 성과를 더욱 내는 공기업을 통해 경제발전을 이룬 국가들도 있음을 이야기한다. 결국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지금껏 당연하게 여겼던 여러 '경제학적 상식'들이 전혀 상식이 아니라는 점이다.

항상 자신의 상식이나 신념이 깨질 때는 혼란이 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그러한 혼란조차도 없었다. 작가가 너무나도 평이하게, 명료하게 근거를 충분히 들어가며 나를 설득시켜 나갔기 때문이다. 이는 아마도 작가의 풍부한 경제학적 지식(작가는 국내에서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경제학자이며 현재 케임브리지 대학 경제학과 교수이다)과 더불어 모두가 행복해야 한다는 그의 확고한 신념 때문이 아닐까 싶다.

세계적인 경제 선진국 대열에 드러선 한국의 국민, 그리고 세계 유수 대학의 경제학 교수. 이러한 신분을 가진 작가가 철저히 약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현재 경제적 발전을 이루지 못하고 빈곤과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여러 개발도상국과 약소국의 입장에서 일관되게 글을 전개해갔다. '그들에게 개방과 자유무역을 강요하는 것은 6살짜리 내 아들에게 사회에 나가 치열하게 경쟁하며 돈을 벌어 오라는 것과 같다'라는 비유에서 그가 얼마나 따스한 가슴을 가진 사람인지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경외감마저 들게 했다.

항상 사람들이 꿈꾸는 '차가운 머리, 뜨거운 가슴'을 느끼고 싶다면, 사고의 틀을 깨는 신선함을 느끼고 싶다면,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 조금이나마 관심이 있다면 한 번 정독하길 권한다. 아마도 지적 즐거움과 감성의 충만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