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色卽是空, 空卽是色[아웃라이어]

2011.03.16 09:46

TOTO 조회 수: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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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콤 글래드웰 지음, 노정태 옮김, 김영사

실용서를 몸서리치도록 싫어한 덕분에 오랫동안 눈 밖에 나 있던 서적이다. 제목부터 '성공'이라는 명제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 같아서, 주변 사람들의 많은 추천에도 불구하고 의도적으로 외면해 왔다. 나에게 있어 '성공하는 비법'은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실천을 못할 뿐이다. 그 누구나 아는 비법을 단지 명성, 권위의 후광을 갖고 있는 이들이 이야기 함으로서 범인들에게 조금 더 설득력 있게 다가갈 뿐이다. 그래서 나에게 성공을 이야기하는 실용서는 순진하고 힘없는 이들을 약올려 돈을 버는 수단에 불과하다. 그나마 효용이라 하면, 매너리즘에 빠진 이들에게 잠시 약발을 발휘하게 하는 스테로이드 정도?

이렇게 장황하게 '성공비법' 실용서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아웃라이어'가 이들과 정면배치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성공(물론 여기에서는 아주 좁은 의미로 사용되어 금전적 성공을 말한다)이 본인의 부지런함이나 천재성 보다는 '환경'에 의지하고 있음을 구체적 사례를 들어 이야기하고 있다. 캐나다의 아이스하키 스타들, 빌게이츠, 비틀스, 오펜하이머 등 Celerbrity 뿐 아니라 대한항공의 비행기사고, 아시아인들의 수학실력 등 다양한 사례를 들고 있어 설득력을 갖출 뿐 아니라 흥미진진하다.

저자의 이야기는 명료하다. 성공하는 이들에게는 이를 뒷받침 할 수 있는 환경이 있었기 때문에, 다시 말하면 그런 환경을 만날 수 있는 행운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탄생의 시기, 유년시절의 기회, 성인이 되어 사회에 진출할 당시의 정치/경제적 상황,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문화적 유산, 언어 등 그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이 최적으로 갖추어졌을 때 비로소 성공을 가능케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일례로 빌게이츠는 고등학교 시절, 그 귀한 컴퓨터를 마음껏 접할 수 있는 학교에 다녔고 그가 성인이 되어 사회에 진출할 때는 경제적 호황과 함께 IT가 태동하던 시기였다. 다시 말해 유년시절에 실력을 견실히 쌓고, 성인이 되었을 때는 Blue Ocean을 선점할 수 있는 기회를 맞닥뜨렸다. 저자는 스티브잡스 등 빌게이츠 또래에 IT기업의 신화를 써내려 간 인물들이 많은 것을 예를 들면서 그의 논거를 뒷받침 한다.

원하던 대학에 합격했을 때, 많이 부러워하던 한 친구에게 내가 건넸던 말이 생각났다. 내가 여기에 합격할 수 있었던 것은 '학력고사에서 수능으로 바뀐 입시제도 + 유난히 수학이 어려웠던 97년도 수학능력시험(나는 수학이 무척 약하다) + 본고사를 대체한 논술시험'이 주된 이유였다고... 만일 학력고사 제도 하에서 수학이 평년 수준으로 나오고, 논술이 아닌 본고사로 대학에서 신입생을 선발했다면, 지금 그 친구와 내 입장은 180도 달라졌을 것이다. 아니, 그 친구만큼의 성과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그 친구보다 더 많은 노력을 했다고는 결코 이야기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학 입학도 이러할 진데, 사회적 부와 명성을 쌓는 성공은 얼마나 더 많은 행운의 조합일지 상상이 되질 않는다.

그래서 무수히 회자되는 '성공신화'는 '色卽是空, 空卽是色'이다. 성공은 있지만, 우리가 좋아하는 '인간승리'의 성공은 없다. 정주영이 2000년대에 태어났다면, 이병철의 집안이 부유하지 못했다면, 최태원이 노태우의 사위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현대, 삼성, SK는 존재했을까?

저자는 성공이 행운임을 이야기하고 더 나아가지는 않았다. 그러나 '성공을 자랑스러워 마라', '쉽게 남을 재단하지 마라',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누구나 같은 출발선상에서 시작할 수 있게 하자'라는 말이 책의 저 너머에 있다는 것은 누구나 쉬이 알 수 있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아직 헛웃음만 나올 뿐이다. 자신의 성공이 단지 행운이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한 채, 그 성공을 더욱 견고히 하려고 힘 없는 이들을 옥죄는 이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모두가 아는 구체적인 사례로 이야기하고, 본의는 숨긴 채 은유만 흘려보내 이 책은 재미있고 세련됐다. 성공의 이유를 오직 자신 안에서만 찾는 못난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