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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을 바라보는 차가운 눈

시청률 경쟁의 허와 실

2011.03.28 15:52

이현국 조회 수:553

우리가 총 제작비 100억원이 넘는 <해신>을 접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가 편당 제작비 2억원이 넘는 <슬픈 연가>를 브라운관에서 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최근의 한류 열풍으로 드라마 판권 값이 올라 투자한 만큼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경향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근원적인 이유는 현재의 왕좌를 놓지 않으려는 KBS와 과거 '드라마 왕국'의 명성을 되찾으려는 MBC의 시청률 경쟁이다. 이들 방송사간의 경쟁 덕분에 우리는 영화를 보는 듯한 영상과 인기있는 배우들의 연기를 동시에 맛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해신>은 <왕건>을 통해 오랫동안 사극에 출현했던 최수종을 또다시 사극에 출연하게 하여 시청자를 지루하게 만드는 선택을 했고, <슬픈 연가>는 '삼각관계', '신데렐라 이야기' 등 뻔한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전개되는 상투적 드라마가 되었다. 기존에 시청자들에게 인기 있었던 요소를 그대로 답습하여 고답적인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 이것 역시 '시청률 경쟁'의 결과라 할 수 있겠다. 참신하고 큰 스케일의 기획을 하도록 부추기는 것, 그리고 참신한 작품을 만들지 못하도록 발목을 붙잡는 것 모두 시청률이라는 '양날의 칼' 때문이다.

결국 시청률은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어내게 하는 자극제인 동시에 새로움을 추구하지 못하게 하는 족쇄이기도 한 모순적 존재다. 하지만 그나마도 시청률이 갖는 두가지 속성의 균형은 자꾸 깨지고 있다. KBS를 제외한 나무지 방송사는 광고 수입이 100%인 현실에서 새로움을 추구하는 작가주의 보다는 시청자의 입맛을 맞추는 현실적인 프로그램들이 브라운관에 보다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보면 시청률은 '족쇄'로서의 역할을 점점 확대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 오락프로그램은 연예인 신변잡기에서 웃음을 이끌어내는 중이고, 드라마는 '신데렐라 이야기', '출생의 비밀', '삼각관계' 이외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작품이 거의 없다.

TV가 우리의 문화 중 하나라는 명제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문화란 본래부터 다양성이 생명이다. 다양성이 담보될 때 문화는 계속 새로움을 창조해 낼 수 있는 내적 동력(動力)을 소유할 수 있게 되며 새로움을 계속 창조할 때 문화는 본래의 어원처럼 화(化), 즉 되어가는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TV는 죽어버린 문화가 된지 오래다. 되어가기는 커녕,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나가기는 커녕 기존의 인기 있었던 코드만 재탕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청률 경쟁의 장점은 살리지 못하고 단점의 병폐만 계속 답습해 온 셈이다.

새로운 시청률 경쟁이 있었으면 한다. 한쪽에서는 누가 더 시청자 입맛을 잘 맞추는가 경쟁한다면 한쪽에서는 누가 더 창조적인 작품으로 시청자의 입맛을 끌어당기는가 하는 경쟁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시청자의 입맛만 탓할 것이 아니다. <대장금>, <조선여형사 다모>, <스펀지>등의 프로그램들이 시청자의 열렬한 호응을 받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2005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