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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가 주는 웃음, 이대로 좋은가

2011.03.28 15:53

이현국 조회 수:587

코미디 프로그램의 진보는 현재진행형이다. 슬랩스틱 코미디 일변도에서 현재는 본격 스탠드 업 코미디를 표방하는 프로그램이 생겼을만큼 장르는 다양해졌다. 뿐만아니라 자그마한 스튜디오에서 진행되던 것이 이제는 화려한 조명 아래서 수많은 관객과 호흡하며 진행되는 콘서트 형식이 일반화되었다. 게다가 꼭지와 꼭지 사이를 연결하는 밴드의 화려한 음악. 분명 코미디 프로그램의 틀은 예전의 것보다 화려해졌다.

그렇다면 그 틀을 채우고 있는 알맹이도 틀만큼이나 화려해지고 고급스러워졌을까. 유감스럽게도 계속 진보하고 있는 것은 틀 뿐인 듯하다. 형식은 화려해지고 장르는 다양해졌지만 그 내용은 오히려 예전의 코미디를 따라가지 못하는 듯하다.

<개그콘서트>의 '어머니의 이름으로', '꽃보다 남자', <웃찾사>의 '단무지 아카데미', '귀염둥이', '행님아', '비둘기 합창단' 등 무수한 꼭지들의 웃음은 코미디언의 뚱뚱하거나 못생긴 외모로부터 나온다. 뚱뚱한 여성은 남자라든지, 못생긴 얼굴은 무기라든지 등등의 외모 폄하를 통해 시청자의 웃음을 이끌어낸다. 이들 외모로부터 웃음을 이끌어내는 것은 코미디 프로그램 뿐 아니라 각종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도 마찬가지다. <X맨>의 '당연하지' 꼭지는 대놓고 연예인의 외모 비하를 통해 웃음을 유발하는 꼭지이며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브레인 서바이벌'에서 김용만은 김흥국의 얼굴을 보고 '함부로 들이대지 말라'며 웃음을 유도한다. 현재 우리나라 방송의 웃음은 외모 폄하로부터 나온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방송은 현대 사회에 영향을 주는 가장 강력한 문화요소다. 문화의 본질은 다양성과 창조성이다. 이 두 요소가 바탕이 될 때 문화는 말 그대로 化, 즉 되어가는 진행형, 생명력을 담보할 수 있다. 그리고 생명력이 담보된 문화야말로 우리가 정신적 풍요를 누릴 수 있게 하는 필수 요소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방송을 지배하고 있는 웃음은 창조성도, 다양성도 없는 상대방의 인격을 깎아 내리는데서 오는 웃음 뿐이다. 이러한 웃음은 우리의 정신을 피폐하기 만들 뿐 아니라 '외모 지상주의'등 잘못된 가치관을 사회에 팽배하게 만드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예전의 코미디는 비록 슬랩스틱 코미디 일변도이긴 했지만 그 속에는 다양성과 창조성이 있었다. 심형래는 '영구'라는 캐릭터를 창조하여 오랫동안 유쾌한 웃음을 선사했으며 김형곤은 회장님의 캐릭터를 빌어 사회를 풍자하는 동시에 시청자에게 카타르시스를 전했다. 그들이 주는 웃음에는 캐릭터를 창조하는 창조성,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웃음을 주는 다양성이 녹아있었다. 현재의 외모 폄하를 통해 주는 웃음과는 차이가 있다.

외모 폄하를 통한 웃음이 대세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가장 인기있는 코미디언이 리마리오와 안어벙인 것은 창조성이 바탕이 된 웃음이 여전히 호소력있음을 반증한다. 이들이 인기있는 것은 물론 그들이 개성있게 창조한 캐릭터 때문이기도 하지만 천편일률적인 외모 폄하 웃음 속에서 신선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고급스럽고 화려해진 틀만큼이나 그 속을 채우는 알맹이 역시 다양하고 화려해졌으면 좋겠다. 맑고 유쾌한 웃음을 누리고 싶기에 리마리오의 더듬이춤과 눈을 꿈벅거리며 멍한 표정을 짓는 안어벙이 그리워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2005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