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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주변을 바라보는 차가운 눈

선택

2011.03.28 15:55

이현국 조회 수:428

설 전날과 당일. 어머니 모습을 거실에서 뵌 적이 없다. 설 전날은 명절 음식 차리시느라, 설 당일은 손님 올 때마다 음식상 준비하시느라 작은어머니들과 함께 부엌에서 나오실 새가 없다. 거실에서 TV보다가, 손님과 이야기하다가, 다시 TV보는 작은아버지들과 아버지, 동생 방에서 컴퓨터게임을 하거나 나가서 농구 한 판 하는 나와 사촌동생들의 명절과 그녀들의 명절은 너무나 대조적이다. 어머니는 그러셨다. 명절 일주일 전부터 마음이 심난하다고...... 그리고 명절 연휴가 끝나면 하루나 이틀은 꼼짝없이 누워 계셔야만 했다.

작가 이문열은 그의 소설 <선택>에서 여성의 최고 삶은 지아비를 정성껏 봉양하고 자식을 훌륭히 키워내며 집안일을 정성껏 보살피는 현모양처의 삶이라 했다. <선택>은 90년대 이후 불었던 공지영, 은희경 등 페미니즘 작가들의 열풍에 대한 기성작가의 근엄한(?) 꾸짖음의 성격이 강했지만 기성 세대가 바라보는 여성에 대한 관점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셈이기도 했다. 즐겁다는 명절에 부엌에서 나오지도 못한 채, '명절 증후군'을 혹독히 앓아야 하는 내 어머니의 삶은 기성세대의 눈에 '최선의 삶'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안타까운 점은 당신의 삶은 '필연'이었고 '강요'였지 '선택'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시대가 강요하고, 관습이 강요했던 힘겨운 삶. 시대가 많이 바뀌어 남성이 가사를 돕는 가정도 많이 생겼다고 하지만 여전히 집안일의대부분은 여성의 몫으로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직장생활 하는 것이 당연한 시대이니 오히려 과거 여성보다 더 힘겨운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진정으로 그녀들이 '선택'할 수 있는 시대는 언제일까. 명절에 부엌에선 남성들의 굵은 웃음소리가 들릴 수 있을 때는 언제일까. 어머니의 '선택'되지 않은 '강요'된 삶의 단편을 바라보면서 잠시 의문을 품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