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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 열외 [진짜사나이]

2014.09.12 22:38

TOTO 조회 수: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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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 : 권석

연출 : 김민종, 최민근

출연 : 김수로, 박형식, 샘해밍턴, 서경석, 장혁, 박건형, 라미란, 홍은희, 김소연, 김혜리, 박승희, 지나, 맹승지

 

어느덧 방송가는 리얼버라이어티가 장악해버렸다. 각본에 의해 짜여진 유머와 처절한 개인기로 시청자의 웃음을 이끌어내던 프로그램들은 겨우 명맥을 유지할 뿐, 대부분의 예능 프로그램은 각본 없는 리얼버라이어티거나 아니면 최소한의 각본을 통해 리얼버라이어티를 지향하는 프로그램으로 채워진 지 오래다. 이러한 상황이다 보니 소재도 다양해졌다. 오지탐험, 생활체육에서부터 싱글들의 생활 엿보기에 이르기까지, 우리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온갖 소재는 총 동원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 소재는 군대에까지 이르렀다. 그 특수성 때문에 예능은 감히 범접하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아니 아예 접근조차 생각치 못했던 군대가 소재로 들어왔다. 군대를 경험해 본 남성들의 생각은 한결 같을 것이다. '군대 많이 좋아졌다', '군대에서 예능 촬영이 가능할까'

 

대부분의 진행 방식은 천편일률적이다. 출연자들이 정신적 혹은 육체적 고난을 겪을 상황을 갖춰놓고 출연자들을 투입. 그 이후 출연자들이 겪게 되는 절망에서 비롯되는 눈물과 회한. 그리고 그 감성을 최대한 밀착해서 극대화 해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는 콘셉트. 리얼버라이어티는 이게 전부였다. 시청자들이 흘리는 눈물은 공감에서 비롯된다기보단 눈물이 갖는 막강한 전염력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시청자들의 감동을 어떻게 해서든 이끌어내려는 안간힘과 처절함이 나를 그 프로그램들에서 더욱 멀게 했다. 억지로 쥐어 짜내는 감동은 카타르시스보다는 공허함이 더 크기 때문이다.

 

<진짜사나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전역한 지 꽤 된, 체력적으로 부칠 수 밖에 없는 중년의 연예인이나 아니면 아직 군대를 경험해보지 못한 새파랗게 어린 연예인, 아니면 외국인. 말 그대로 '제대로 군생활을 해내기엔 부족한' 연예인들을 군에 투입시켜 그 열악한 상황에서 터져나오는 고통과 준엄한 기운 속에 어이 없는 행동이 유발하는 웃음들. 군대라는 특수성이 없다면 이게 전부인 '진부한' 프로그램에 불과하다.

 

<진짜사나이>에 대해 대중들이 왈가왈부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군대'는 아직까지 우리에게 국가의 안보를 책임지는 '준엄'하고 '통제되어야 할' 공간이기에 예능 프로그램의 촬영이 다른 군인들에게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와 멀게만 느껴졌던 군대를 보다 친숙하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는 긍정적인 시선이 공존했다. 모두 맞는 말이다. 이러한 우려와 긍정의 시선. 모두 처절하게 공감한다.

 

하지만 프로그램 외적인 면을 모두 떠나, 철저하게 프로그램 자체만을 놓고 <진짜사나이>를 본다면, 그토록 진부한 형식에도 불구하고 이 프로그램만이 갖는 비장의 무기가 하나 있다. 바로 '공감대'다.

 

<정글의 법칙>에서 등장하는 오지탐험이나 <심장이 뛴다>의 소방관 경험은 정말로 특수한 경험일 뿐더러 맘 먹고 시도하기조차 어려운 경험이다. 이 때문에 이들 프로그램에서 오는 눈물과 웃음은 철저히 제 3자적인 관점에서 온다. 그래서 잠시동안의 눈물과 웃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리얼버라이어티로 시작했지만, 결국 <개그콘서트>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물론, 예능이 그 정도만 되어도 썩 괜찮은 프로그램이다. 그 것 뿐이다.

 

하지만 <진짜사나이>는 어떤가. 대한민국의 인구가 대략 5천만, 그 중 남자가 2천 5백만. 이 중 대충 반만 뚝 떼어내도 1,250만명.

적어도 이 프로그램을 볼 때 절절히 공감할 수 있는 시청자가 이미 천만명이 넘는 상황.

 

우리가 오래된 친구들을 만날 때, 새로운 이야기를 과연 얼마나 할까. '인간은 추억을 먹고 산다'고 했던가. 적어도 나누는 이야기 절반 이상은 항상 반복하는 소중한 추억이며, 2000년대 초반에 불었던 아이러브스쿨의 광풍, 그리고 지금 다시 불기 시작하는 BAND 열풍을  보고 있노라면 이러한 예측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대한민국 남성에게 '군대'는 가장 Hot 한 추억이다. 20대 초반이라는 인생의 황금기에 맞이했던 추억이며, 또한 삶에 있어서 가장 고통스런 추억 중 하나일 것이기에 그렇다.

 

당연한 것인 줄만 알았던 편안한 일상과 부모님의 사랑이 위대한 것이었음을 깨닫는 시간, 가장 가슴 절절한 이별을 맞이하는 시간, 생전 경험해보지 못한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처음 견뎌내는 시간, 그리고 이러한 모든 고통을 능히 견디고도 남음이 있을 정도로 건장한 신체를 보유하는 시간. 그래서 군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가장 가슴 깊이 박혀있는 추억이자 공감대다.

 

이런 막강한 무기를 가진 프로그램이기에 리얼버라이어티라는 틀을 다 알면서도 계속 보고 있는 나를 본다. 입대 후 처음 부모님과 통화하는 순간 흘러나오는 눈물의 이유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며, 뽀글이가 주는 형언할 수 없는 맛을 누구보다도 잘 기억하고 있다. 훈련장에서 뛰쳐나갈만큼 고통스런 화생방 CS캡슐의 향기가 아직 뇌리 속에 그대로 남아 있으며, 힘들 때 손을 건내는 전우의 뜨거운 마음 역시 내 심장 깊숙히 잘 간직되어 있다. PT 8번이 주는 복부의 경련과 목봉의 무게, 초코파이 한 입이 안겨주는 황홀함도 아직 그대로 내 몸 어딘가에 남아있다. 그래서 계속 본다. 출연자가 바뀌었을 뿐, 반복되는 일상과 훈련임에도 계속 본다. 추억은 반복해도 지겹지 않기 때문이다. 추억은 곱씹을수록 그 맛이 깊어지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여군 특집이 한창 진행 중이다. 훈련 간간히 '군대간 친구들에게 잘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그녀들의 생생한 고백을 들을 때마다 내 온 몸이 전율한다. 이는 아마도 모든 사람이 갖고 있는 '어리광 본능' 때문이리라. 나 힘 든 것, 이제 좀 알겠지? 좀 잘 해주지 그랬어 라는...

 

예능을 예능 이상으로 볼 마음은 조금도 없다. 다만, '감동'을 노리는 프로그램이라면 '공감'이라는 필수요소가 가미되어야 함을 일깨워주는 좋은 예시임을, 요즘 범람하는 다른 리얼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게 일깨워줬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그리고 조금 더 바란다면, 나의 아들들이 군대 갈 즈음까지 계속 이어져서 '정말 저래요?'라는 그들의 물음에 자신있게 답해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찾는 '진짜사나이'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여린 가슴을 부여잡고, 비틀거리면서도 '진짜사나이'의 길을 걷는 '그냥 사나이'만 존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