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9.11 09:53
★★★★★
감독 : 조규장
출연 : 이성민, 김상호, 진경, 곽시양, 신승환
길게, 구구절절히 설명해도 전해질까 말까 하는 메시지를,
음계 하나, 붓질 하나, 장면 하나로 강렬하게 전달하는 것이 예술이다.
오랫만에 그 짜릿한 통증을 느꼈다.
한 여성이 쫓긴다. 비명을 지른다. 살려달라 외친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 한가운데, 하지만 나와보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럴 법도 하다.
사람이 죽어 나가는 판에 오직 집 값과 자식 학원시간만 걱정하는 사람들이다.
사라진 부인을 찾는 남편에게 집 값 떨어지니 조용해 달라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이 그깟 비명소리에 꿈쩍이나 할까.
베란다에서 그 여성이 살해되는 순간을 목격했다. 범인과 눈이 마주쳤다. 그가 우리 집 층수를 세고 돌아섰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까.
지킬 것이 피끓는 내 몸 하나 뿐이던 시절과는 다르다.
직장에서 젊은이들에게 외면 받는 씁쓸한 중년은,
이 세상에 온전히 내 것이라곤 가족과 집 한 채 뿐인 서글픈 중년은,
그 '내 것'만 온전히 지키자는 선택을 한다.
가장 안전해 보였던 그 '선택'은,
범인이 주인공의 보금자리를 맘대로 활보하며 다른 목격자를 죽이도록 만들었다.
지킬 게 많은 그의 '선택'은 오히려 지킬 것들을 위기로 몰아 넣는다.
정신없이 쫓기고, 쫓던 이야기의 끝은 이렇다.
눈 오는 이삿날, 폐가구 스티커를 붙이고 주인공은 그 여자가 살해당한 화단에 선다.
"사람 살려요!"
그렇게 몇 번을 외쳐도, 여전히 아무도 내다보지 않는다.
개인주의가 강해지는 세태를 비판하는 기사, 글을 접한 지가 수 십 년이 됐다.
비판의 대상인지도 모르겠고, 또 오랫동안 접하다 보니 그에 대한 감각이 무뎌졌다.
하지만 눈 내리는 화단에서 '사람 살려'라고 외치는 주인공의 모습은
오랫동안 무뎌져 온 이 시대 우리의 자화상을 마주하는 서글픔을 하나하나 되살려놨다.
근래 본 영화 중 최고의 명작이다.
그런데 왜 네이버 평점은 저 모양일까?
네이버에 로그인 해서 평점을 매길 정도의 여유가 중년들에겐 없어서일까?
여운이 한동안 이어질 듯 하다.
크레딧이 올라갈 때, 뜬금없이
한영애의 <누구 없소>가 떠올랐다.
여보세요 거기 누구없소
어둠은 늘 그렇게 벌써 깔려 있어
창문을 두드리는 달빛에 대답하듯
검어진 골목길에 그냥 한번 불러봤소
날 기억하는 사람들은 지금 모두
오늘밤도 편안이들 주무시고 계시는지
밤이 너무 긴 것 같은 생각에
아침을 보려 아침을 보려하네
나와 같이 누구 아침을 볼
사람 거기없소
누군가 깨었다면 내게 대답해줘
여보세요 거기 누구없소
새벽은 또 이렇게 나를 깨우치려
유혹의 저녁 빛에 물든 내 모습 지워주니
그 것에 감사하듯 그냥 한번 불러봤소
오늘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지금
벌써 하루를 시작하려 바삐들 움직이고
아침이 정말 올까 하는 생각에
이제는 자려 이제는 자려하네
잠을 자는 나를 깨워 줄 이
거기 누구없소
누군가 아침되면 나 좀 일으켜줘
누군가 아침되면 나 좀 일으켜줘
누군가 아침되면 나 좀 일으켜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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