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10 16:53
우리학교 기숙사는 기독교 전도의 온상이었다.
신입생이 들어오는 3월이 되면,
UBF, IVF... 이름도 비슷한 여러 단체 소속의 선배들이,
친근한 미소와 말투로 신입생들에게 다가간다.
'선배'라는 이름이 주는 부담 때문에,
신입생들은 '싫다'는 말 한 번 제대로 못하고 몇 번은 끌려간다.
나도 그랬다.
그 형의 천성이 착하다는 걸 부정할 순 없다.
하지만 맹목적으로 주는 다양한 선물과 편지, 대화의 시간들이
나에게는 큰 부담이었다.
일방적 공세와 거절이 반복되던 어느 날.
그 형은 또 내 방에 찾아왔다.
그리고 설득 아닌 설득을 하기 시작했고,
나 또한 거절 아닌 거절을 하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했다.
"형, 이순신 장군은 하느님을 섬기지 않았으니, 지옥으로 갔겠네요?"
많이 당황한 것 같다.
뭐라고 이야기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어쨌든 그 형님의 결론은 '그렇다'였다.
"이순신 장군 같은 분도 단지 믿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옥을 간다면, 저도 믿지 않을래요"
그리고 나는 군대를 갔다.
그렇게 서서히 그 형과도 멀어졌다.
가끔 생각한다.
그 형 말대로,
저 멀리서 나를 항상 살펴보고 있고,
나를 위해 시련도 주고, 길도 열어주는 절대자가 존재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얼마나 든든하고 행복할까.
스스로 버티는 게 힘들수록, 그런 절대자에 대한 갈망은 더욱 강렬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믿음을 갖기에는
나는 너무나 타락했고, 너무나 합리적이며, 너무나 비판적이다.
그 절대자가 내 앞에 나타나 '절대자'의 능력을 보여주기 전에
종교에 귀의할 일은 없다.
딱 봐도 느껴질 정도로 늙어가고 있고,
판단력과 문장구사력도 현저히 떨어지고,
말투도 어눌한 이만희를 절대자로 신봉하는
신천지 교도들은 얼마나 순수하고 깨끗하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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