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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좋은 개살구 [지리산]

2021.12.13 16:37

TOTO 조회 수: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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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출 : 이응복

극본 : 김은희

출연 : 전지현, 주지훈, 성동일, 오정세, 조한철, 전석호, 김영옥, 주민경, 이가섭, 고민시

 

수 년간 정주행 한 드라마가 없다. 내 앞의 현실이 더 드라마 같아서였을까. 아니면 생물학적인 아저씨가 되어 감에 따라 뉴스와 시사프로그램을 더 찾게 되어서일까. 한 때 내 모든 것이었던 드라마는 그렇게 계속 멀어져갔다. 

TV를 흘려보다가 우연히 드라마 예고를 봤다. '김은희 극본'이라는 문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주저 없이 방영시간을 기억해뒀다. 

나에게 김은희 작가는 <시그널>로 기억된다. '과거와 현재의 연결'은 진부한 소재지만, 이미 일어난 사건을 미래와 현재의 형사가 함께 해결해 간다는 서사는 극한의 긴장감과 궁금증을 선사했다. 다음 화를 기다리는 시간이 고통스러울 정도였다. 김은희 작가는 그 이름만으로 <지리산>을 기대하게 했다. 

전편을 본방사수 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1, 2화를 봤다. 3화부터는 의무감으로 봤다. 이야기는 한 없이 느슨하고,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오는 간접광고는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눈에 거슬리는 CG는 이미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에 길들여진 시청자들을 조롱하는 듯 했다. 최종 시청률 9%, 이 적지 않은 시청자 대부분은 아마 나처럼 '김은희' 이름 석 자 때문에 보기 시작해서, 어쩔 수 없이 끝까지 본 사람일 것이다. 

이야기의 큰 흐름은 '사고사로 위장한 살인'을 자행하는 범인 추적이다. 그러나 매 회 새로운 단서가 등장하고, 그에 맞춰 범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은 계속 바뀐다. 처음엔 대장(성동일 분)이었다가 정구영(오정세 분)으로 초점이 바뀌고 말미엔 내내 김웅순(전석호 분)이었다. 하지만 결국 범인은 김솔(이가섭 분), 극 전개 내내 거의 모습을 비치지 않던 미지의 인물이었다. 범죄를 저지른 이유도 극 말미에 겨우 드러난다. 제작진이 매 회 단서(그것도 엉뚱한)를 던져주면, 시청자는 그 단서가 가리키는 범인을 바라본다. 이 과정이 매회 반복된다. 이쯤 되면 서스펜스가 아니라 서사극에 가깝다. 서사극을 서스펜스 형식으로 전개하니 이야기는 겉돌고, 시청자는 헤맨다.

굳이 지리산이어야만 했을까. 지리산이어야 했다면 무당과 귀신 다룬 호러물이면 어땠을까. 숱한 간접광고 대신 출연료 저렴한 주연배우를 쓰면 어땠을까.  김은희의 극본, 전지현, 주지훈 출연. 오랫만에 빛 좋은 개살구를 실컷 먹었다. 그리고 전지현은 언제쯤 연기가 늘까. 그녀는 로코 외에 소화할 수 있는 장르가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