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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을 바라보는 차가운 눈

Masterpiece[폭싹 속았수다]

2025.03.30 21:40

TOTO 조회 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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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시리즈)

연출 : 김원석

극본 : 임상춘

출연 : 아이유(오애순 兒役, 양금명 役), 박보검(양관식 兒役), 문소리(오애순 役), 박해준(양관식 役), 염혜란(전광례 役),
        나문희(김춘옥 役), 강유석(양은명 役), 최대훈(부상길 役), 정해균(오한무 役), 오정세(염병철 役), 엄지원(나민옥 役)

 

걸작. 이 말만 떠올랐다. 

격동기의 한 가족을 통시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파친코>를, 우리나라 역사적 사건에 맞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건 <응답하라> 시리즈를, 가부장제에 대항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는 <82년생 김지영>과 <아들과 딸>을, 제주의 풍광과 사투리를 마음껏 휘두루며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건 <우리들의 블루스>를 닮았다. 그러나 닮기만 했을 뿐, 수준은 이 모두를 뛰어넘었다. 본떠 만든 게 아니라, 알찬 내용물을 가장 어울리는 그릇에 담다 보니 닮게 된 것 뿐이다. 

유년시절 오애순(아이유 분)을 향한 양관식(박보검 분)의 지고지순한 사랑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광례(염혜란 분)와 애순, 애순과 금명(아이유 분, 1인 2역)까지 3대에 걸친 여성들의 가부장제에 대한 저항과 인내를 거쳐, 참척의 슬픔을 나누는 애순과 춘옥(나문희 분)의 에피소드를 들러, 가난하지만 모든 걸 내어준 부모의 자부심을 지키는 금명, 누나의 그늘에서 항상 부모 관심에 목마른 은명의 설움에 다다른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느껴봤던, 가족 안에서의 다양한 감정을 어루만진다. 

그럼에도 클리셰로 빠지지 않는 건 시적이면서도 간결한 대사와 내레이션 덕이 크다. 쥐어짜기보단 한번 푹 찌르고 지나간다. 얽매이지 않는다. (어린 가지가 또 어린 가지를 낼 때, 나무가 얼마나 숨죽여 떨었는지 모른다 - 금명의 출산 때 흐르는 내레이션) 이런 글은 거듭 생각하고 가다듬어 더이상 응축할 수 없을 때에만 나온다. 모든 문장을 이렇게 담아낸 작가에게 경의를 표한다. 다양한 인물들의 애환을 이토록 간결하면서도 가슴 아리게 표현했던 작가는 없었다. 작가 '임상춘'은 가명이다. 여성이라는 것 외에 신상정보가 없다. 상관없다. 이런 작품을 계속 써 주기만 하면 좋겠다.

대본을 따라 배우들의 연기도 군더더기 없다. 과하지 않고 애쓰지 않는다. 박보검은 <응답하라 1988>의 최택처럼 최소한의 대사와 표정으로 모든 것을 담아냈고, 아이유는 '애환이 담긴 귀여움'을 표현하는 국내 최고의 배우로 올라섰다. 문소리와 박해준의 연기력은 여전했다. 누구나 공감하는 아름답고도 간결한 대사는 배우들의 연기를 춤추게 한다. 모든 대사와 표정이 살아있었다. 덕분에 잠깐 나오는 조연에게도 쉽게 동화될 수 있었다.

영상은 이 작품을 예술의 경지로 올려 놓는다. 아름다운 제주의 1년치 풍광이 오롯이 화면에 담겨, 모든 장면이 그림 같았다. 게다가 미장센마저 완벽해, 영상만으로도 감탄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애순과 관식의 첫키스 장면은 이런 노력의 결정체였다. 

이 작품을 오롯이 즐길 수 있는 한국인이어서, 70년대생이어서 다행이다. 더할나위 없었다.

 

"해 보고 아니다 싶으면 바로 빠꾸. 아빠 항상 여기 있으니까" 

"엄마는 엄마대로 행복했어. 그림같은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다고. 그러니까 딸이 엄마인생도 좀 인정해 주라."

'너무나 어렸고, 여전히 여린 그들의 계절에 미안함과 감사, 깊은 존경을 담아 폭싹 속았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