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11 11:46
★★★★★
김범석(서울대병원 종양내과 전문의) 지음
흐름출판
법의학자 유성호 교수의 유튜브에서 접하고 다음날 바로 서점에 갔다. 필자가 '종양내과' 의사였기 때문이다.
책은 폐암으로 돌아가신 저자의 아버지 이야기로 시작된다. 필자가 의사가 된 것도 아버지 덕분이다. 폐암으로 힘들어하는 아버지를 낫게 하고 싶어 의사가 되었고,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고 간 암을 정복하고 싶어 종양내과 전문의가 됐다.
인류가 '암'에 대해 밝혀온 사실을 순서대로 설명한다. 초창기 암은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영문 모를 혹이었고, 다음엔 독가스를 투입하면 치료되는 의문의 질병이었지만, 최근에는 분화 중에 생긴 돌연변이, 자가면역이 불가능한 '세포'임을 밝혀냈다. 다른 세포들처럼, 암도 투여된 항암제를 피해 살아남기 위해 진화하고 널리 퍼진다. 그래서 치료가 쉽지 않다. 외부의 적이 아닌, 내부의 변절자이기 때문이다.
결국 암은 타자가 아닌 나 자신, 내 몸의 수호신인 T세포(면역세포)가 공격할 수 없는 내 세포였다. 이는 외부의 지속적인 자극(환경, 음식 등)이 축적된 결과이며, 노화의 산물이다. 우연히 생긴 돌연변이가 증식해서 암덩이로 발전할 확률은 극히 미미하지만 '인체의 세포 수 X 분열횟수'를 고려하면, '현대인인의 1/3은 죽기 전에 암에 꼭 걸린다'는 명제가 쉽게 납득된다. 필자의 말대로 '암에 걸린 게 불행한 게 아니라, 걸리지 않은 게 행운'이다.
그 과정에서 작가는 계속 질문을 던진다. 내 세포가 변형된 암, 그럼 누가 나인가? 나와 너의 경계는 무엇인가? 7년 전의 나는 지금의 나와 같은 것인가(7년은 우리 몸 전체의 세포가 1회 이상 교체된 시기)? 암세포는 내가 아닌 것인가? 꼭 항암치료를 해야 하는가? 항암치료는 살기 위한 것인가, 암을 없애기 위한 것인가? 왜 암이라 하면 두려워 하는가? 실질적인 암보다는 '암'이라는 단어가 갖는 서사 때문 아닌가?
이런 질문들에 답을 구하기 위해 작가는 사방팔방 뛰어다닌다. 그가 인용하는 수 많은 고전, 불교경전, 인문서적들은 작가가 수많은 죽음을 접하며 수없이 고뇌한 흔적일 것이다.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들어서게 된 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시작한 이 전쟁에서 그는 점점 승리의 목적이 무엇인지, 진정한 승리가 무엇일지 고민한다.
그가 깨달은 것은 결국 제목대로 '죽음은 직선이 아니다'라는 점이다. 나와 너의 구분이 없듯이, 삶과 죽음도 구분이 없다. 삶은 곧 죽어가는 과정이고, 죽음을 뒤로 미루는 것이 곧 삶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행복하게' 죽음을 미루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항암치료가 버거운 사람에게는 고통을 최소화 하며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진정한 의사임을 뒤늦게 깨닫는다.
매일 죽음을 접하고,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시달리며, 바쁜 일상을 쪼개며 사는 삶. 일상을 그냥 살아내는 일상으로 넘기기 쉬운 삶 속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고뇌하는 의사가 있다는 사실에 반갑고 고맙다.
구분이 명확한 삶은 쉽고 격렬하다. 구분이 모호한 삶은 따분하고, 잔잔하다. 나이 듦은 그 경계선을 지워가는 과정이다. 나도 그랬다. 작가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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