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한국어

시선

주변을 바라보는 차가운 눈

Why, why, why...[여우야 뭐하니]

2006.10.13 11:29

TOTO 조회 수:1262

1.jpg
★★★

방송 : MBC  수~목 밤 09:50
기획 : 김남원
연출 : 권석장
극본 : 김도우
출연 : 고현정, 천정명, 조연우, 김은주, 손현주, 윤여정, 권해효, 안선영, 서영, 이혁재

아슬아슬하게 외줄타기를 하고 있다. 어느 한 쪽으로 무게중심이 움직이는 순간, 떨어지고 만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여우야 뭐하니> 얘기다.

보통 언론을 이야기할 때 '객관성'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는다. 하지만 그것은 언중의 입장이다. 언론사의 입장에서는 '고유의 논조'나 '색깔'을 무시할 수 없다. 모든 언론사가 천편일률적으로 객관성만 추구한다면, 그래서 어떤 신문을 읽어도 차이를 느낄 수 없다면 언론사 존재의 의미가 있을까? 하지만 이 둘을 동시에 갖추기란 어렵다. 아니, 불가능하다. 최대한 객관성을 갖추며 선명한 논조를 가지거나, 선명한 논조를 가진 신문이 완벽히 객관적이라는 것은 모순이다.

공중파 방송사 역시 이러한 딜레마를 갖고 있다. 시청자는 계속 분화되거나 변화하지만 공중파 방송사는 이러한 시청자들을 따라잡을 수 없다. '국민의 세금이 투하된 공영방송'이라는 무거운 족쇄가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공영성'이라는 실체도 분명치 않은 의무 때문에 어느 것 하나 마음껏 만들 수 없다. 안그래도 갈수록 진보하는 첨단 미디어 때문에 시청자들이 떨어져나가는 판에 더욱 힘겹다. 재미있는 방송, 공영성. 공중파 방송 역시 이 둘의 딜레마 속에 갖혀 있다.

<여우야 뭐하니>의 등장은 고현정의 두 번째 드라마 복귀작이라는 점, <내 이름은 김삼순>의 작가가 집필했다는 점으로 방송 전부터 대중으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뚜껑을 연 결과, 이 둘보다는 '선정성'에 초점이 맞춰졌다. 등장인물들이 취하는 갖가지 성적인 동작들과 대사들은 이 드라마를 '공영성'과 '진보'의 논쟁에 휩싸이게 했다.

기본적으로 '선정성'이라는 것에 난 아무런 이의를 달지 않는다. 이 드라마는 '15세 이상 시청가'등급이다. 갈수록 성문화 개방이 빨라지는 지금, 중학교 2학년 이상의 청소년들에게 이 드라마가 선정적으로 비춰질지는 의문이다. 게다가 케이블 방송이 제 구실을 못하는 우리나라에서 계속 '공영성'을 구실로 시청자의 '볼 권리'를 붙잡아 맬 것인가. <여우야 뭐하니>는 공중파 방송사가 갖는 딜레마에 논란의 불씨를 던진 것 만으로 의의가 있다.

하지만 작품 속으로 들어가면 '왜?'라는 의문이 멈추지 않는다. 드라마는 세 개의 커다란 사랑 이야기로 전개된다. 병희(고현정 분), 철수(천정명 분), 희명(조연우 분)의 삼각관계, 준희(김은주 분)와 병각(손현주 분), 조순남(윤여정 분)과 직원(이 커플은 아직 본격적으로 전개되지 않아서 앞으로의 행방이 묘연하다). 한 마디로 다양한 사랑 이야기다. 어디서 본 것 같지 않은가? 영화 <러브 액추얼리>, 혹은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질펀하게 성적 대사와 동작을 남발하면서도 결국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사랑은 내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라는 상투적인 이야기다. 이런 상투적인 이야기를 할 것이면서 왜 그렇게 성적인 표현에 집착을 했을까? 시청률 이외에는 답이 없다.

<내 이름은 김삼순>에 사람들이 열광했던 것은 상투적인 신데렐라 이야기도, 현빈의 화려한 외모도 아니었다. 외모, 이름 등 갖가지 콤플렉스에서 당당하기 위한 삼순이의 고군분투였다. 그래서 '너무 오래 굶었어'라는 성적인(물론 실생활에서는 그다지 선정적이지도 않지만) 대사도 눈감아 줄 수 있었다. 삼순이의 당당함을 위한 대사, 더 나아가 여성의 당당함을 위한 대사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씁쓸하다. 순진하고 맹한 병희는 삼순이가 올려 놓은 여성을 다시 추락시킨다. 제 뜻대로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희명에게 당하고, 철수에게 당한다. 이 뿐인가. 준희(김은주 분)는 출세를 위해 병각(손현주 분)과 연애를 하기도 한다.  당당하고 자신을 높이는 여성은 없고, 남자에게 의지하는 여성, 주관 없이 주변에 의해 흔들리는 여성만 존재한다. 그리고 그런 여성들이 펼쳐가는 그저 그런 사랑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런 상투적인 이야기를 그리기 위해, 그토록 논란에 휩싸인 '성적 표현'에 집착한 것인가. 성적 표현의 수위는 진보했을지 몰라도, 작가가 그리는 이야기의 수준은 <내 이름은 김삼순>보다 훨씬 떨어지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무성한 논란이 아깝다.

하지만 채널을 돌릴 수는 없다. <봄날>에서 확인했다시피 외모와 연기력에서 10년 전보다 한층 업그레이드 된 고현정으로부터 시선을 떼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고현정의, 고현정에 의한, 고현정을 위한' 드라마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고현정은 이미 한 편의 드라마를 책임지고도 남을 정도의 배우다. 그런 소모적인 비판보다는 '어쩐지 <봄날>에서 본 것 같은' 그녀의 연기를 비판 하는 것이 보다 현명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