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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주변을 바라보는 차가운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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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공중그네), 양억관(인더풀) 옮김, 은행나무

'책을 읽으며 배를 잡고 웃은 것이 몇 년 만인가',
'이라부 정신과에 놀러오세요. 폭소의 바다로 확실하게 날려 드립니다!'

이 책의 소개에는 '웃음'만이 전면에 배치되어 있다. '정신과 전문의'라는 근엄한 타이틀을 지니고 있는 이라부의 순수하고도 엽기적인 행동과 처방. 그래서 책을 읽는 동안 나 역시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기 어려워 한참이나 '킥킥'대며 출퇴근 했었다.

그러나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폭소는 안타까움과 쓰라림으로 변해간다. 등장하는 환자들은 대부분 '강박'으로부터 심리적인 불안이 시작되었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너무나도 복잡하고 엄하게 얽혀있는 현대사회, 이 공간에서 살아남으려 애쓰다보니 그들은 자연스레 '환자'가 되었을 뿐이다. 인간관계, 자본, 힘의 논리, 그리고 생존. 과연 이 공간에서 무던히 살아가고 있는 우리 중에 조금이라도 심리적인 '환자'가 아닌 사람이 있을까? 그래서 점점 마음껏 웃기 힘들어진다. '환자'가 '환자'로 느껴지지 않고, '나', 혹은 '우리'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며 마음껏 웃을 수 있는 사람은 '완벽히' 이 사회에 적응하고 있는 비정상적인 사람이거나(혹은 사람이 아니거나), 그저 생각없이 시간과 함께 흘러가는 사람 뿐이다.

이 책은 옴니버스 형식으로 되어 있다. 각각 정신병(엄밀히 말하면 심리적인 불안감이나 공황상태)을 앓고 있는 환자들과 이라부의 치료아닌 치료과정이 중심내용이다. 말이 치료지, 어찌 보면 환자의 심리적인 약점을 더욱 긁어 놓거나, 더욱 황당한 행동으로 환자를 공황상태로 만들어 놓는 것이 전부다. 그러나 그런 이라부의 한 발 더 나아간 행동으로 말미암아 환자들이 자신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 그것이 '바보이거나 명의'인 이라부의 '치료법'이다. 이렇게 이라부가 현대 사회의 '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고, 또 환자들이 싫어하면서도 이라부를 찾게 되는 것은 이라부가 현대사회에서는 '존재해서는 안되는' 혹은 '존재할 수 없는' 사람, 즉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상향이기 때문이다. 계산도 없고, 간악하지도 않고, 오직 본능에 따라 순수하게 살아가는 사람. 아마도 독자들이 이라부에게 열광하는 것은 '만화'에 열광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 현실세계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황당함. 그래서 조금이나마 불안하고 지친 심신을 위로받으려는 심리.

크게 광고되었다시피 '공중그네'는 '아쿠타카와상'과 함께 일본의 양대 문학상 중 하나인 '나오키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제 아무리 '대중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상이라 하더라도 단순히 이라부가 선사하는 표면적인 황당함 만으로 상을 수여할 리는 없다. 현대사회를 향한 예리한 시선이 해학과 함께 어우러져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항상 '해학' 속에 섞여 있는 슬픔과 풍자는 배가 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