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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의 드라마란 이런 것[천국의 계단]

2004.02.09 16:45

TOTO 조회 수: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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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수, 목 밤 9:55
연출 : 이장수
극본 : 박혜경
출연 : 최지우, 권상우, 신현준, 김태희, 이휘향, 하재영, 정한용

이장수PD도 '시청률을 의식했다'고 시인한 드라마, 최후는 비록 겉은 화려했을지언정 그 속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은 공허함 뿐이었다. 워낙 가리지 않고 드라마를 좋아하는 나임에도 불구하고 초반 몇회를 본 뒤 난 MBC '천생연분'으로 채널을 돌릴 수 밖에 없었고 주말의 재방송 혹은 드라마넷에서 우연히 시간대가 맞아 본 것이 전부였다.

드라마가 흥행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코드는 철저히 갖췄다. 가족의 불화로부터 전개되는 이야기, 근친간의 사랑, 철저히 구분되는 선과 악, 일반인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부유층을 다룬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로라 하는 스타들의 동원.

기획의도는 이루어지기 힘든 '숭고한 사랑'의 묘사였다. 하지만 그 숭고한 사랑은 보통의 사람으로서 상상하기 힘든 사건과 인물들이 전개해나가고 있어 시청자에게 다가오기 보다는 계속 겉돌기만 했다. 극을 통해 시청자들은 숭고한 사랑에 감화되기 보다는 그저 그들이 풀어놓는 이야기를 맥없이 따라가기만 해야 했다. 그리고 울라고 강요하는 부분에선 터무니없이 비약된 설정 때문에 눈물을 글썽일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시청자들을 더욱 겉돌게 하는 것은 극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는 주연 세명의 탁월한(?) 연기력이 한몫을 톡톡히 했다. 형편없는 연기력 때문에 흥행작 하나 없는 영화배우 신현준, 데뷔 10년째임에도 그때나 지금이나 그저 그런 연기를 보여주는 최지우, 번듯한 얼굴과 몸매 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권상우. 이 셋은 가뜩이나 현실성 없는 황당한 이야기를 더욱 현실성 없게 했다. 단지 허울좋은 호화 캐스팅이 시청률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확인해 줬을 뿐. 오히려 그간 드라마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김태희가 신인 치고는 꽤 괜찮았다. 물론 오버하는 것이 계속 눈에 거슬리긴 했지만 말이다.

대놓고 기업광고 하는 것 역시 SBS 다웠다. 극중 송주(권상우 분)가 운영했던 Safe zone, 극이 끝나자마자 후원사에 Save zone이 바로 뜬다. 예전 '요조숙녀'에서 등장했던 게임회사 이름이 Suny여서 웃기지도 않더니만 이번에도 역시 그랬다. 또한 송주가 몰고 다니는 차 역시 요즘 신문 광고에서 매일 등장하는 BMW의 신차다. 거의 내가 본 매회마다 빠지지 않고 그 미끈한 몸체를 보여줬던 것으로 기억한다. 화가인 태화(신현준 분)가 그림을 내내 그렸던 장소가 롯데월드라는 것도...

꽤 멋진 영상도 여럿 있었지만(특히 별장이 위치한 바닷가는 캐스팅이 무척 좋았다. 물론 거기에서 피아노 치는 장면은 웃기지도 않았지만...) 주연들의 겉도는 연기 덕분에 그 맛도 심하게 떨어졌다. 극중 자주 나오는 메인테마('아베마리아'만 계속 반복되는 음악)는 괜찮았는데 이미 유명해진 곡인 김범수의 '보고싶다'를 O.S.T로 또 사용한 의도는 뭔지...

신인을 발굴하기보단 이미 몸값이 천정부지로 올라가있는 스타들의 대거 캐스팅, 현실은 과감히 생략하고 딴세계에서만 펼쳐지는 황당한 이야기, 그나마도 매끄럽지 못한 연결, 여기저기 자주 난무하는 광고들. '천국의 계단'은 SBS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드라마다. 40%에 육박하는 시청률, 이 덕분에 이보다 괜찮다고 생각되는  MBC의 '천생연분'을 많은 사람들이 접할 수 없었다는 점이 더욱 아쉽다.

감상문이라 함은 자고로 장점도 찾아야 할 터인데, 유감스럽게도 눈씻고 찾아봐도 찾기가 너무 힘든 드라마, 다음 SBS드라마를 기대해봐야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