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한국어

시선

주변을 바라보는 차가운 눈
43_p2.jpg

★★★

감독 : 배형준
출연 : 김하늘, 강동원, 송재호, 임하룡

김하늘이라는 배우가 내 뇌리에 각인된 건 SBS의 '해피투게더'란 드라마였다. 그녀는 가녀린 외모만큼이나 청순, 지고지순한 이미지의 수하역을 연기했고, 난 그녀에게 걸맞는 이미지라 생각했던 것 같다. 다른 방송사를 넘나들면서 그녀는 한동한 심은하와 비견될 정도로 비슷한 루트를 따라 갔었고, 그 때문에 '그저그런' 이쁜 배우중의 하나로 묻혀 지나갈지도 모를 그런 배우였다.

그녀의 본격적인 변신은 아마도 MBC 미니시리즈 '로망스'에서 시도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자신이 맡은 학생인 김재원과 사랑에 빠지는 국어선생님 역할의 그녀는 단순히 '지고지순'으로 굳어졌던 자신의 이미지를 과감히 던져버리고, 조금은 푼수끼있는 이미지로의 변신을 시도했고, 그 변신은 상당히 성공적이었다. 그 이후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를 통해 그녀의 이미지는 한발짝 더 나아가 전혀 밉지 않은 여우의 과외선생 역할을 훌륭히 소화했고, 영화는 대박을 터뜨렸다.

이번 영화 '그녀를 믿지 마세요'는 TV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다져진 그녀만의 '밉지 않은 여우' 이미지를 중심에 놓고 기획된 것임을 공공연히 선포한 듯 하다. 계속되는 거짓말이 이어지고 이어지는 이야기의 서술구조는 연극 '라이어'와 흡사하기도 하지만 그 거짓말의 중심에 있는 김하늘 덕분에 영화는 전반적으로 부드럽고 달콤한 향기가 물씬 풍긴다. 갖은 스캔들과 연기력 부족 때문에 구설수에 오르긴 해도, 그녀가 주는 달콤함의 매력은 그 모두를 덮고도 남음이 있을 정도로 강력하다.

영화로서의 작품성이고 어쩌고는 멀리 제쳐두고, '코믹'을 표방한 영화로서 관객에게 웃음을 선사하는데는 일단 성공적이다. 억지 웃음을 일으키는 화장실유머도 등장하지 않고 우연한 에피소드만으로 엮어나가는 이야기와 김하늘의 '여우'연기는 충분한 시너지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게다가 이번 영화로 스크린을 데뷔하는 강동원 역시 데뷔작인 점을 감안한다면 볼 만 하다. 연인끼리, 혹은 친구끼리 가서 실컷 웃다 오는 영화로서는 추천작.

그러나 일단 영화의 전반적인 무게가 김하늘에게 너무 치우쳐 있어 자칫 거북함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공공의 적'이나 '광복절 특사'가 주연에게 확실한 무게감을 실으면서도 조연의 무게를 줄이지 않아 균형감 있는 웃음을 줬다면 이번 작품은 모든 웃음은 김하늘로부터 비롯되어 김하늘로 종결되기 때문이다.

결론 또한 조금은 여운을 주는 것이 괜찮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딸랑 몇가지 에피소드, 그것도 관객에게 웃음을 주는데 허비한 에피소드 만으로 결혼까지 연결하는 것보다는 단지 그들의 사랑이 시작될 수도 있다는 암시를 주는데까지만 영화를 끌고 갔다면...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은 이제 식상할 때도 되었는데 말이다.

뻔한 로맨틱 코미디의 서사구조, 지금껏 봐온 김하늘의 이미지. 식상한 것 투성이지만, 잘만 조합된다면 그래도 주말에 즐길 수 있는 괜찮은 영화 한편은 될 수 있다는 걸 톡톡히 보여주는 영화. 그리고 식상함에도 불구하고 김하늘은 여전히 달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