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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내게로 오다[서양미술사]

2005.08.26 02:25

toto 조회 수:7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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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른스트 H. 곰브리치 지음, 백승길, 이종숭 옮김. 예경

올 컬러 재질 오백여 페이지가 뿜어내는 어마어마한 두께, 사백여개의 도판, 무시무시한 크기. 택배로 이 책을 받아 든 나는 딱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서양의 모든 예술작품을 소유한 것 같은 뿌듯함과 장식용으로 전락시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어두침침한 표지에 더할 나위 없이 간결한 제목. 많은 사람들이 ‘필독서’라기에 의무감 반, 호기심 반으로 큰 맘 먹고 구입한 이 책과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됐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면서 그 두려움은 ‘흥미’라 바뀌었고 뿌듯함은 더욱 큰 희열로 변해갔다. 저자는 고대 알타미라 벽화에서부터 현대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에 이르기까지 미술의 반만년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간다. 그 정리도 여느 개론서처럼 딱딱한 이론 설명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 도판의 내용과 의미를 설명하면서 물 흐르듯 이어진다. 사용되지 않은 책장이 없을 정도로 풍부히 사용된 도판은 저자의 이야기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보조재, 저자가 야기를 풀어가는 화두, 그리고 독자가 쉬이 질리지 않고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삽화의 기능을 충실히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이 진정으로 뛰어난 점은 방대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책 전체에 작가의 미술에 대한 관점이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점이다. 그 많은 시대, 양식, 작가, 도판을 설명하면서도 작가는 백과전서 식으로 빠지지 않고 끊임없이 ‘미술’의 본질을 되묻는다.

작가는 서두와 말미에 “미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미술가만 존재할 뿐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5000년의 미술 역사를 살펴보면서 그는 이 명제가 허구가 아님을 증명한다.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고상하고 품격 있는, 감상을 위한 예술’로서의 미술은 겨우 근대에 확립되었다. 고대에는 주술의 수단으로써 우리가 아는 대로 그려내기에 급급했던 미술이었고, 중세 고딕 미술은 성서를 쉽게 설명하기 위한 수단으로 존재했다. 르네상스에 이르러서야 미술은 현실감을 추구하기 시작했으며 현대 들어서 미술은 작가의 의식을 표현하는 도구로 변화했다. 이러한 양식(책 내내 작가는 이 말을 사용한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사조’나 ‘흐름’과 비슷한 의미로 보아도 무방하다)의 변화처럼 미술은 고정된 실체가 아닌 다양한 원인들에 의해 탄생하고 발전하며 소멸하는 진행형이다. 작가가 이 책에서 독자에게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여기에서 비롯된다. 미술의 관념은 이렇듯 절대적인 것이 아니니 모든 미술에 대해 관용을 갖자고 작가는 말한다. 이러한 작가의 일관된 관점이 있기에 나는 무수한 양식과 도판을 접했음에도 난잡하지 않을 수 있었다. 이 점이 <서양미술사>가 갖는 최고의 장점이며 수십 년간 필독서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라고 생각한다.

맞춤법에 맞지 않은 표기가 종종 눈에 띈다. 독자들에게 어느 정도 권위를 갖고 있는 책인 만큼 사소한 결점임에도 아쉬움이 남는다. 뿐만 아니라 이 두꺼운 책을 양장본으로 제작하지 않고 굳이 종이커버로 만든 점 또한 의문으로 남는다. 양장본으로 만들었다면 오랜 시간동안 독자들에게 두고두고 읽힐 보물로서 자리매김 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