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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세는 없다[형사:Duelist]

2005.09.21 21:12

TOTO 조회 수: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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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각본 : 이명세
출연 : 강동원, 하지원, 안성기, 송영창, 김보연, 이한위

한 영화프로그램에서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조금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영상을 통해 이야기하는 것이 이번 영화에서 자신이 뜻하는 바였다고 그는 말했다. 이 이야기를 들었다면 누구나 <인정사정 볼것없다>를 떠올리며 <형사>를 주저없이 선택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그의 말대로 영상만큼은 감탄할 만하다. 매 장면을 보며 '어떻게 저렇게 조명이 어색한 부분이 하나도 없이 깔끔하게 영상을 만들어냈을까?'하는 생각을 계속 했기 때문이다. 천연색이 화려하게 수놓는 장면이나, 무채색이 묘하게 대비되는 장면 모두 가히 '영상미학의 진수'였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하지만 영화는 화려한 회화를 배열하는 것으로 마무리 될 수 있는 예술이 아니다. 극이라는 장르의 정체성은 내러티브와 구성에 있는 만큼 영상의 미학은 사진에서는 전부가 될 수 있을지언정, 영화에서는 전부가 될 수 없다. <형사>의 한계는 거기에 있다.

아름다운 영상, 단지 그 뿐이다. 내러티브와 긴밀히 연관지어지지 못하는 그 아름다운 영상들은 가끔은 실소를 자아내게 했고, 가끔은 질력이 나게도 했다. 뜬금없이 등장하는 칼춤시위나(물론 영화상에서는 결투하는 장면이지만), 끊임없이 등장하는 슬로우모션, 조명의 압박이 느껴지는 강동원의 얼굴이 나타나는 장면 등은 영상으로 이야기했던 감독의 의도마저 퇴색시키기에 충분했다. 영상으로 이야기하고자 했던 감독이 영상에 매달린채 영화라는 장르의 기본마저 잃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게다가 내러티브는 엉성하기 짝이 없다. 처음에 의미심장하게 등장하는 김보연은 그 이유를 도통 모르겠다. 또한 주인공 하지원이 조금 더 털털해진 것, 김민준 대신 강동원이 투입된 점만 제외한다면 얼마전 MBC에서 방영했던 <조선여형사 다모>와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 가짜 돈을 찍어내는 고위 관리와 그를 잡으려는 포도청의 대결, 적과의 사랑에 빠진 여형사. <다모>의 리메이크라 할 정도다. 혹시, 정말 리메이크일 수도 있겠다. 만약 아니라면, 영상미를 추구하는 영화에서 이야기는 어떠한 것을 사용하든 괜찮다는 말인가?

<인정사정 볼것없다>의 이명세는 <형사>에 조금도 없다. 단지 눈매가 맘에 들어 캐스팅했다는 강동원에 흠뻑 빠진, 그리고 예쁜 화면 만들기에 급급한 이명세가 있을 뿐이다. 그의 이름을 믿고 극장을 찾았던 나를 자책할 뿐이다.

단, 강동원을 좋아하는 팬이라면 강추다. '하지원보다 예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강동원의 근사한 얼굴을 실컷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근사한 얼굴'만을 가진 배우에 불과하다. 대사가 거의 없는 영화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매끈한 얼굴을 들이미는 것 이외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표정만으로 말하는 방법을 아직 모르는 그를 주인공으로 캐스팅한 것 역시 이명세의 치명적인 실수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