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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편린들

긴 방황의 끝?

2022.08.31 16:17

TOTO 조회 수:17

토스카를 구입한지 14년, 그동안 크게 속썩이지 않고 잘 달려줬다. 

하지만 고질병인 뒷휀다 녹이 슬슬 올라왔다. 

이제는 양쪽 모두 동전 크기의 녹이 선명하다. 

쉽게 고칠 수 없는 부위, 덩달아서 차 관리까지 하지 않게 됐다. 누더기 차가 됐다. 

 

이제 40대 중반, 돋보이진 않더라도 궁핍해 보이긴 싫었다.

튼튼하고 커튼에어백 있는 차로 가족을 보호하고도 싶었다. 

차는 충분히 낡았고, 약간의 경제적 여유도 생겼다. 

차를 살 때가 됐다.

 

The K9 중고를 일찌감치 점찍어 뒀다. 

크고, 화려하고, (대형차라)감가도 컸기 때문이다.

중고차 사이트를 드나들며 며칠동안 열심히 알아봤다. 

내겐 적지 않은 돈, 정비사까지 대동하고 직접 살펴봤다. 

그간 흘려들었던 GDI 엔진의 결함, 겨우 5만km 뛴 새 차에 엔진오일이 없었다. 

GDI 엔진을 두루 쓰는 현대와 기아를 제외하니 선택지가 별로 없었다.

수입차로 눈을 돌렸다. 

수입차 중고 구매의 위험을 알기에 새차로 눈을 돌렸다. 

다시 처음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벤츠, BMW, 아우디...모두 싱글터보엔진. 

고급유를 넣어야 하고, 고성능 엔진이기에 시간이 지나면 탈이 많이 나는 편이다.

단념했다. 

 

평소 좋아하던 브랜드인 볼보 S90, 이 차도 싱글터보. 

일반유 넣어도 괜찮다지만, GDI의 현실을 목격한 내겐 '엔진결함 가능성'이 가장 큰 리스크였다. 모두 제외했다. 

 

결국, ES300H가 남았다.

잔고장이 적다는 명성은 게으른 나에게 최고의 장점이었다. 

경쟁차종 중 가장 넓은 뒷자석은 키가 날로 크는 태경이에게 안성맞춤.

인테리어와 편의장치는 후순위였기에 좀 구식처럼 보여도 상관없었다. 

연비가 뛰어나고 정숙한 건 덤이었다. 

 

좀 못달리면 어떤가, 구형플랫폼이면 어떤가, 알루미늄 합금 적으면 어떤가,

튼튼하고 적당히 고급스럽고, 적당히 예쁘고, 잔고장 적은 차. 

어쩌면 내게 가장 어울리는 차가 아니었을까?

 

시승해 보고, 바로 계약했다. 

빠르면 6개월, 늦으면 8개월. 

아직도 변경할 수는 있다. 

 

긴 방황은 평소 눈여겨 보지도 않았던 목적지에 도달한 후 끝났다.

그래서 인생은 재미있다. 

 

하지만 좀스런 내 성격 때문에, 

아직도 이 돈을 주고 이 차를 사는 것이 괜찮은 건지 계속 반문하는 중이다. 

예산 안에 벤츠, BMW, 신형 제네시스까지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종류가 달라질 뿐, 예산이 많아도, 적어도 내 맘에 쏙 드는 물건을 찾는 건 늘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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