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6.12 15:11
★★
연출 : 김대진, 김정욱
극본 : 정여랑
출연 : 엄정화(차정숙 역), 김병철(서인호 역), 명세빈(최승희 역), 민우혁(로이킴 역),
의사인 남편, 남편의 강요에 따라 같은 병원 레지던트가 된 아들, 그리고 중단했던 공부를 다시 해 아들 후배가 된 엄마. 늘 시작은 흥미롭다. 여러 가족이 의사인 경우는 있겠지만, 전문의를 향한 과정 중 가장 험난한 과정, 레지던트를 엄마와 아들이 함께 시작한다는 설정은 비현실적이지만 기대감을 키웠다.
얼마 전 JTBC 드라마 제작국 관계자의 인터뷰 기사를 본 적 있다. 동영상 플랫폼, OTT로 상당수 고객이 빠져나간 시대, TV의 주요 고객은 어느덧 40대 이상이 되었다. 그래서 작품선정의 기준이 40대 이상이 공감할 이야기, 대중적이면서도 재미있는 이야기여야 흥행이 보장된다는 내용으로 기억한다.
이 드라마는 철저히 그 관계자의 이야기대로 구성되어 있다. 전업주부로 가족을 위해 희생하며 살아가던 50대 주부가 뒤늦게 자신의 꿈이었던 의사를 향해 나아간다. 우여곡절 끝에 남편과 아들이 있는 병원 레지던트에 합격하게 되고, 착한 성격으로 주변의 질시, 후배들의 무시 등을 이겨내며 승승장구 한다. 자신을 괴롭히던 병마와 싸우며, 남편의 외도에도 맞서야 한다. 그리고 결국, 자신의 꿈을 이루며 행복하게 살아간다.
드라마는 더 할 나위 없이 재미있다. 근엄하면서도 허당인 김병철(서인호 역) 연기의 비중이 8할 이상이지만, 보는 내내 웃었다.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했다. 그런데 허. 전. 하. 다.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결론은 '비현실적 이야기'로 '현실적 공감'을 이끌어내려 한 점이다. 아귀가 맞지 않으니 개운하지가 않다.
의사의 위상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시대다. IMF 이전엔 의학과 공학이 공존하던 시대, 개인의 적성에 따라 '선택'하는 시기였다. 그러나 이제는 서울대 공대보다 지방의 이름모를 의대가 더 입학하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불확실성의 시대, 전문직이 주는 위상은 날로 높아졌고, 그 중 의사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정도다.
그런 의사가 집안에 세 명이나 있는 가정, 덕분에 넓고 쾌적한 타운하우스 단지에서 풍요롭게 사는 가족. 물론 어떤 나무에도 바람은 일고, 가지는 흔들리겠지만 코로나 이후 최상위층을 제외한 모두의 삶이 퍽퍽해진 시대. 의사 가족들의 투정을 들어주기엔 시청자들 삶에 여유가 없다. 하루하루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이들 앞에서 '자아'를 찾아가는 50대 주부의 이야기는 크게 힘을 잃는다. 비현실적인 설정으로 유쾌함을 선사했지만, 현실의 시청자들이 공감하기엔 거리가 너무 멀다. 아예 유쾌한 판타지였으면 덜 허전했을까?
주인공인 엄정화 역시 그렇다. 연기 잘하는 50대 여배우. 주인공과 비슷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비현실적이다. 나이 들기 싫을 여배우들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수십년을 가족에게 희생하며 살아온 50대 주부의 얼굴이 엄정화에게는 없다. 온갖 시술을 통해 늙지 않으려는 노력만 보일 뿐이다. 비현실적인 50대 여배우 엄정화의 얼굴에서 빈집 증후군으로 흩날리는 50대 주부를 조금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더욱 허전하다.
무슨 일을 하다 보면, 그리고 그것이 큰 돈과 노력을 들이는 것이라면 욕심이 커지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 욕심을 제어하지 못하는 순간, 이야기는 흩날리고 시청자는 허전함을 느낀다. 하고픈 이야기가 많은 것과 입체적인 건 다르다.
또 하나, 나이 드는 걸(나이 들어보이는 걸) 두려워 하지 않는 여배우가 많았으면 좋겠다. 시간을 거스르기 위한 노력 보다는, 시간에 순응하며 다양한 얼굴과 깊이를 보여주는 여배우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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