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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한 흡인력과 깊이 [풍수전쟁]

2023.07.25 10:09

TOTO 조회 수: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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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대한 소설가는 아니다. 깊이 있는 작가도 아니다. 하지만 뛰어난 이야기꾼이다. '김진명'은 내게 그렇다. 

학창시절, 내 손에 잡힌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하늘이여 땅이여>의 책장은 폭풍처럼 넘어갔다. 최근에 출간 중인 <고구려> 역시 미친 듯이 읽다가 작가의 휴지기에 막혀 나도 강제휴식 중이다. 그의 책을 읽을 때, 중간에 멈출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넷플릭스 등장 전에, 미드가 유행하기 전에 우리에겐 김진명의 소설이 있었다. 최신작 <풍수전쟁>도 마찬가지. 어젯밤 첫 장을 읽기 시작하니, 새벽까지 멈출 수 없었다. 김진명만큼 흡인력 강한 작가는 손에 꼽을 정도다. 

김진명표 소설의 강력한 흡인력은 '비교적 얕은 깊이'와 '거침없는 서사'로부터 비롯된다. '깊이'는 작가의 고뇌다. 깊은 고민으로부터 나온 칼칼하면서도 텁텁한 문장이나 가슴 한 켠을 날린듯 한 여운이 그의 소설에는 없다. 또한 그의 문장 대부분은 서사와 지나칠 정도로 친절한 인물의 감정 설명이다. 독자가 등장인물의 심경과 행동을 보고 생각에 빠져들 여유가 없다. 바로 설명하고, 바로 행동하고, 바로 다음 서사로 이어진다. 그렇지만 멈출수 없다. 이전 서사가 끝나는 동시에 이미 강력한 다음 서사가 이어지기에 책을 놓을 수 없다. 소설을 읽는 내내 얕지만 강력하게 독자를 휘몰아친다. 

그렇지만 그의 작품이 대충 쓰이는 것은 아니다. 그의 소설을 읽다보면 처음 접해 당황스런 내용이 많은데, 확인해보면 대부분 팩트다. 적어도 뼈대가 되는 내용과 그 배경은 철저히 검증하며 쓴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서는 대한민국의 물리학 천재, 이휘소 박사가, <하늘이여 땅이여>에서는 광개토왕릉비가 이야기의 근간이었다. <풍수전쟁>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논란이 된 '철령위' 위치논쟁이 소설의 큰 뼈대다. 이를 토대로 풍수학을 엮어 소설의 살을 붙이는데, 여기에 등장하는 한자의 기원, 왜덕산, 천명산, 보리산, 일본밀교 등 대부분의 소재가 모두 '사실'에 발을 딛고 있다(읽으며 당황해서 찾아본 내용들이다). 독자들이 쉽게 접하지 못한 숨어있는 역사적 사실을 끄집어 내 살을 붙여 이야기로 엮는다.

예전엔 김진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치기 어린, 젊은 날의 내 기준으로는 '작품성'과 '깊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때의 나에겐 좀 더 심오하면서도, 현학적이어야 끌렸다. 지천명을 향하는 지금은 좀 다르다. 작품성(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좀 부족하면 어떤가? 깊이가 좀 없으면 큰일인가? 그는 여전히 '대한민국의 역사'를 기반으로 푹 빠져들 수 있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최고의 이야기꾼이다. 그의 책을 펼치는 순간 서너시간이 감쪽같이 사라진다. 이런 김진명을, 그리고 그의 작품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과도하게 전지적인 작가시점으로 서술되고, 소설 중간중간에 담은 작가의 메시지가 지나치게 꼰대스럽기에 요즘 사람들에겐 낯설고 촌스러울 수 있겠다. 하지만 흥미진진한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는 내게는 아직도 안성맞춤이다. 앞으로도 내가 몰랐던 역사를 많이 꺼내주면 좋겠다. 그런데 <풍수전쟁> 쓸 시간은 있으면서, 왜 <고구려> 8권은 집필을 안하시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