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06 09:14
★★★★
연출 : 유인식, 강보승
극본 : 강은경, 임혜민
출연
한석규(김사부), 안효섭(서우진), 이성경(차은재), 김민재(박은탁), 소주연(윤아름), 진경(오명심), 변우민(남도일), 김주헌(박민국), 임원희(장기태), 윤나무(정인수), 이신영(장동화), 이홍내(이선웅), 이경영(차진만), 유연석(강동주)
의학드라마를 제대로 본 건 <종합병원> 이후 처음이다. 한동안 드라마를 멀리 하기도 했지만, '의학드라마는 단순하다'라는 편견이 더 강력한 이유였다. 주요 무대는 병원, 리얼리즘을 위한 각종 처치장면과 전문용어의 등장. 그래서 의학드라마가 보여줄 수 있는 이야기는 비교적 단순하고, 그 확장이 제한적이라는 편견에 막혀 의학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았다. 의학드라마 인기의 정점을 찍은 <종합병원>도 그랬다. 주인공들이 의사 가운만 입었을 뿐, 평범한 청춘드라마에 불과했다.
<낭만닥터 김사부 3>를 본 건 우연이었다. 의학드라마에 대한 내 편견에 한석규 연기의 식상함까지 더해, <낭만닥터 김사부> 시리즈는 내 흥미를 전혀 끌지 못했다. 하지만 세 번째 시즌까지 만들어질 정도로 인기 있는 드라마. 우연히 2회를 본 이후, 계속 보게 됐다. 내 편견 속 의학드라마와는 달랐다.
실력은 뛰어나지만 출세보다는 오직 사람을 살리는 것에만 관심있는 김사부. 그리고 여러 이유로 의사사회에서 주류에 들지 못하는 인물들이 김사부의 설득을 통해 의사에게는 불모지나 다름없는 돌담병원으로 모여든다. 개개인이 갖고 있는 아픔을 이겨내고, 김사부의 열정을 배우면서 차츰 뛰어난 팀을 이루는 이야기. 흡사 공포의 외인구단과도 비슷하다.
의사가 아니라서 이 드라마가 얼마나 현실을 반영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매번 몰리는 환자에 치이고, 스스로 실력도 쌓아야 하는 동시에, 예산권을 쥔 조직에도 잘보여야 하는 의사의 민낯이 생생히 그려진다. 또 숨쉴 틈 없이 환자를 보고, 의료사고가 발생하고, 보호자들에게 질책을 당하면서 법정에도 출두해야 하는 의사의 고통도 여과없이 보여준다. 복장만 의사일 뿐, 아름다운 청춘드라마였던 기존 의학드라마와는 다르다. 시간, 육체적 한계, 정신적 고통과 싸우면서도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는, 정말 사명감 없이는 쉽게 해내기 어려운 직업이 의사임을 볼 때마다 깨닫는다.(물론 실제보단 많이 과장했겠지만)
그리고 아무리 조연이라도 상당수 인물들을 에피소드를 통해 입체적으로 그린다.(이는 작가와 연출가의 힘이다) 절대 선과 절대 악이 단편적으로 부딪혔던 과거와 달리, 모든 인물들에게는 '그래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불우한 환경은 서우진의 삐딱함을 설명하고, 김사부를 향한 질투는 차진만의 커리어를 뒷받침한다. 절대악도 절대선도 없다. 모두 주변에 '있을 법'한 사람들의 이야기. 그래서 이 드라마는 현실과 비현실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그리고 결국 이들이 이루는 공동체는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이상향으로 진화한다. 각자의 아픔을 꺼내고 보듬으며 한 걸음씩 나아가, 결국 김사부의 지도 아래 최고의 팀이 된다. 원망과 질시보다는 격려와 신뢰로 서로를 단단히 묶는다. 한 번 굴러가기 시작한 눈공은 계속 커진다. 유명 병원을 마다하고 돌담병원으로 사람들은 계속 모인다. 이 한가운데엔 김사부가 있다. 최고의 실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오직 의사의 본분에만 충실한 우직함과, 겉으로는 퉁명스러우면서도 동료들의 결핍을 진심으로 보듬는 따스함을 모두 가진 리더다.
드라마의 대부분 요소가 현실적이지만 비중이 가장 큰 김사부가 가장 비현실적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가 재미있다. 척박한 현실 속에서 누구나 바라는 비현실적인 리더가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잠시 브라운관을 통해서나마 그에게 기대고, 의지한다. 김사부가 있으면 나도 모르게 든든하다.
이게 기존 의학드라마와 <낭만닥터 김사부 3>의 차이다. 겉만 현실적이고 속을 허구로 가득채웠던 기존 의학드라마, 현실을 철저히 그린 가운데, 우리의 낭만으로 가득찬 주인공이 이야기를 이끄는 <낭만닥터 김사부 3>. 이 둘은 한 끗 차이다. 하지만 그 한 끗 때문에 시청자는 울고 웃는다.
PS)
수술 장면에 등장하는 인체 소품도 제작비가 상당한 걸로 아는데, 거기에 아낌 없이 투자한 점도 마음에 든다.
그 덕분에 시청자는 의사가 얼마나 어렵고 힘든 직업인지 더 생생히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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