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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주변을 바라보는 차가운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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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독 : 김유진
출연 : 양동근, 정진영, 김명국, 기주봉, 한채영

지금까지의 경찰영화(투캅스 시리즈, 테러리스트 등등)를 살펴보면 그 안에 숨겨져 있는 자그마한 영웅주의를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다. 뒷골목의 범죄자들을 을러대며 정보를 캐내고, 한편으로 원한이 깊거나 관객들이 이를 부득부득 갈던 범인은 멋진 상처를 한두군데 입으면서 악랄하게 잡곤 한다. 이것도 아니면 뛰어난 능력을 소유해서 마치 경찰은 보통 사람과는 다른 부류의 인간임을 은연중에 강조하기도 한다. 이러한 경찰영화에서 경찰은 우리와 같은 인간의 위치에서 벗어나, 우리의 갈증과 심리적 스트레스를 해소시켜주는 영웅의 위치에까지 다가가 있다.

이렇게 서두를 길게 이끈 것은 물론 '와일드카드'의 그러한 관례에서의 탈피를 강조하기 위함이다. 이미 영화가 개봉하면서부터 너무 들어서인지 얼마만큼은 각오하고 있었으면서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선으로 우리사회의 '경찰'이란 존재에게 다가가고자 했던 감독의 의도는 분명 참신하다.

어쩌면, 지금까지 그들은 항상 우리 주위에 없는 듯 존재하면서도, 영화에서만 영웅으로 번쩍 하고 나타나는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범인 잡기 위해 쏜 총 때문에 계속 수사받고, 징계까지 받아야 하는 '사람'이 있다. 자신이 잡은 범인 덕분에 항상 협박전화에 시달리는 부인을 둔 '사람'이 있다. 뉴스의 사건사고를 보면서 세상살기 무섭다고 한탄하는 보통 사람들 뒤에, 그러한 뉴스에 고개를 못드는 '사람'들이 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은 분명 솥뚜껑보고 놀라듯, 한번 칼에 찔린 경험 덕분에 칼만 봐도 손이 떨리고 그자리에서 얼어버리는 '사람'이 있다. 결혼을 하기 위해서 직업까지 속여야만 했던 '사람'들이 있다. '국경일'이란 별명이 너무나 우습기만 하지만, 그 말속에 그들의 애환을 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결국 그동안 영웅이어야만 했던 경찰, 그들도 결국 평범한 '사람'에 불과했음을, 단지 그들의 비장의 무기인 '몸뚱이'를 갖고 죽는지도 모르면서 덤볐던 것이 우리나라의 '경찰'이었음을 감독은 은연중에 말한다. 결국 감독은 그들의 위치를 영웅에서 '사람'으로 끌어내렸다.

흔히 표현주의 영화의 시선은 어느 방향으로 튈지 가늠하기 힘들지만, 사실주의의 성향이 강한 영화일수록 시선이 아래로 향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네가 살아가는 현실, 이 현실에는 분명 희망이 존재하지만, 그보다 많은 절망과 비탄들이 우리를 억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웃고 있는 정진영과 양동근이 프레임을 채우고 있다 하여도, 음악은 항상 현실을 잊지 말기를 당부하고 있다. 그리고 극중의 두 주인공이 주고 받는 농담 역시, 공직자 순직 1위 경찰, 그들의 처량한 현실의 수치에 관한 것이다. 폼내기 위해 외워둔 그러한 수치들은 결국, 프레임에서 나타나고 있는 영웅인 경찰과, 현실 속에서의 경찰의 차이를 부각시킬 뿐이다. 감독의 사실주의적 시선, 이는 음악과 극중의 분위기, 그리고 그들의 대화 속에서 너무도 세련되게, 그리고 관객들이 알아채지 못하게 다가서고 있고, 이를 감지한 관객이라면, 감독의 현실로의 이끌어내림에서 벗어나기 힘들게 된다.

액션 역시 그리 대역이 필요할만한 부분이 없다. 단지 삼면이 바다이며, 북으로 60만 대군이 지켜서고 있다는 사실만 믿고 열심히 뛰는 장면, 그리고 절대 폼나지 않는 무술이 전부다. 하지만, 너무도 비현실적이어서 황당한 액션보다는 사실적인 것이 보다 큰 동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법칙 역시 충실히 보여주었다.

그리고...양동근에 관한 이야기이다. 내가 양동근을 처음 접했던 KBS드라마 '서울뚝배기', 그리고 십수년 후에 다시 만났던 MBC의 '네멋대로 해라', 그리고 지금 '와일드카드'. '네멋대로 해라'에서의 양동근은 나에겐 충격 그 자체였다. 과연 '저 대사가 대본에 있는 것이었을까?'라는 의심이 들 정도로 너무도 자연스럽게 소화해내는 그 덕분에, '네멋대로 해라'는 현실의 여백을 충실히 느낄 수 있는 드라마였으며, 가슴 한구석을 멍하게 했던 작품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그의 사실적 연기는 영화에서도 빛을 발했다. 아마도, 한동안 사실주의적 시선이 담긴 작품이라면, 그리고 핸섬한 외모가 필요한 배역이 아니라면(물론 사실주의적 작품이라면 그러한 외모가 필요 없겠지만...)그는 한동안 우리나라의 몇 안드는 뛰어난 배우로 자리잡고 있으리라.

이 영화를 보고 온 친구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은 '한채영은 왜 나왔나'였다. 한채영의 의미는 아마도 '형사 재수 역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에 불과하다.'는 의미를 부각시켜주는 것이 아닐까? 그러한 역할을 위해서라도, 정진영의 부인 역할이 단역급 배우인 것에 비하면 조금 균형이 맞지 않긴 하지만, 영화라는 것이 상업성을 절대 배재할 수 없다는 현실을 보면, 나에게 그리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 부분이 영화 전체적인 흐름에 있어서 그 흐름을 거스르는 부분이라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오히려 그저 단역배우로 처리했다면, 그리고 한채영이기에 많은 신을 할애했던 것을 조금 줄였더라면 더욱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을텐데 아쉽다.

그리고, 역시 아무리 어려운 현실에 처해 있어도 '경찰은 영웅이다'라고 결론짓는 결말. 모두가 잘되고 웃는 지나치게 깔끔한 마무리 역시, 약간은 허탈한 웃음을 짓게 만드는 마무리였으며 처음 극을 이끄는 것 같은 세련됨이 아쉬웠다. 결국, 아무리 현실을 돌아보려는 노력이 역력해도, 그들은 영웅이어야 했고, 그래야 우리 관객에게는 깔끔함과 더불어 통쾌함을 주기 때문일까?

하지만 내가 언급한 아쉬움들은, 내가 영화를 보면서 느낀 희열과 감동, 눈물에 비하면 너무나도 사소한 것들이다. 나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괜찮은 경찰영화 하나를 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