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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수분[이적2집 : 2적]

2003.09.15 22:02

TOTO 조회 수: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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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으로 쓴 '화수분'은 이적을 가리킨다. 혹자는 너무 과분한 단어가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겠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지켜본 뮤지션으로의 이적은 끊임없는 보물을 계속 토해내고 있는 화수분임이 분명하다. 그것도 보물의 종류가 각양각색인 호화찬란한 보물...

내가 생각하는 가수의 극한은 싱어송라이터(sing a song writer)일 때 가능하다. 물론 가수라 하면 곡의 감정을 제대로 재현해낼 줄 아는 감성과 음감이 있으면 그것만으로 훌륭한 가수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멜로디가 떠올랐을 때의 감정을 가장 잘 아는 이는 자신 이외에 누구이겠는가? 자신의 음량과 음감을 가장 잘 파악하는 이가 자신 이외에 누구이겠는가? 이 때문에 내가 생각하는 가수의 극한은 작곡과 노래가 함께 이루어질 때에 달성될 수 있다고 아직까지 믿고 있다. 외국의 비틀즈나 엘비스프레슬리 등부터 시작하여 우리나라의 조용필, 신승훈 까지 오랜 기간동안 사랑받는 전설적인 뮤지션들 중에는 싱어송라이터가 많다는 점(물론 아닌 예도 있지만)이 나의 믿음을 뒷받침해주기도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싱어송라이터로 인정받는 뮤지션들을 보면 이승환, 유희열, 신해철, 신승훈, 김동률, 박진영, 김현철, 윤상, 김종서등 손가락으로 꼽힐 정도다.(물론 어디까지나 언더를 배재한 숫자이다.) 이들의 뮤지션으로서의 기간은 이제 꽤나 된 것이어서 이들의 음악은 신곡을 냈다 해도 음악에 관심이 있는 이가 한번 들어보면 마치 누구의 음악일 것 같다는 감이 생길 정도가 되었다. 이는 그만큼 그들의 색깔을 그들의 음악에 강하게 담고 있다는 뜻도 될 수 있겠지만, 나쁜 말로는 그들이 이루어 놓은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뜻도 될 수 있다. 물론 뮤지션이 사람인 이상, 자신이 선호하는 코드의 조합과 리듬이 있는 한 어쩔 수 없는 것이긴 하다.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기 이전에는 말이다. 이들의 음악은 계속해서 장르와 형태를 넘나들어 변화되고, 또 변화되고 있긴 하지만, 그들이 갖추어놓은 색채까지 변화시킨다는 것은 자신에게 익숙한 음악을 한다는 점, 자신의 색채를 선호하는 팬을 허무는 것을 의미하고 또 한편으로는 지금껏 자신이 들여온 노력에 곁들여 지금의 것을 파괴하고 새로운 것을 또 다른 경지만큼 끌어올리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결국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결단하는데 전혀 쉬운일이 아니다. 이 때문에 우린 결국 모방임에 불구한데도 서태지의 새로움에 열광하고, 신해철의 변신에 감탄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이적에게 시선을 옮긴다. 패닉 1,2,3집, 긱스 1,2집, 솔로앨범 1집, 그리고 지금 2집. 이렇게 그가 작사, 작곡, 편곡, 노래, 프로듀싱, 심지어 건반이나 드럼등의 세션까지 참가해 완전히 '이적'의 음반인 위의 음반들 하나하나를 나열한 것은 그 음반들의 색채를 한번 떠올려보기 위함이다. 이 일곱장의 앨범은 그 어느 하나도 다른 하나의 연장선상에 있는 앨범이 없으며 각각의 독특한 색채를 뚜렷히 발하고 있다. 물론 그 대중성에는 차이가 있어 사랑을 받은 앨범과 외면된 앨범은 있지만 그 어느 하나 비슷한 색채의 앨범은 없다. 이러한 무정형성이 이적의 음악이 갖는 특징이라면 하나의 특징이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이적풍'의 음악이 각 앨범에 한두곡씩 끼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옷이 같은 색의 실 한가닥 사용했다 하여 전체적으로 비슷한 옷이 되는 것은 아니잖는가?
그리고 또 하나의 특징은 노래말이다. 내가 그를 좋아한 것은 아마도 그의 열광적인 음악과 더불어 내 뒤통수를 한대 후려친 느낌이 날 정도로 통쾌했던 '왼손잡이'의 가사 때문일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망치지 않아, 난 왼손잡이야'라는 가사를 보고 나는 '사회학도 이적'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런 자신의 생각을 아무렇지도 않게 은근슬쩍 끼워넣는 이적과 그의 노래가 나는 더더욱 좋아졌다. 나의 기대를 허물지 않고, 이적은 그 특유의 '은근슬쩍'을 매 앨범마다 재치있게 보여주었고 그렇게 몇년이 흘렀다.

이번 앨범인 '2적'은 그의 전역후 첫 앨범이다. 창조를 업으로 삼는 사람에게 군대는 아마도 물을 충분히 고일 수 있는 공간이었을 것이다. 본인의 말로는 30여곡을 만들어왔고 그 중 11곡을 이번 앨범에 실었다 한다. 이 앨범을 구입한지는 꽤 되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적의 앨범이 곡 듣고, 가사 보고, 곡듣고, 가사보고를 반복하면 할수록 괜찮은 앨범이 되어간다는 사실을 알기에 구입 한달만에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다. 솔로1집은 내가 군에 있을 때 나온 것이어서 나온지도 모르고 지나가 지금 없지만, 2집을 들어본 지금 '역시 이적'이란 느낌밖에 들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원조 '이적풍'의 노래에서부터 너무 느낌이 다른 11곡들이 빼곡히 담겨있는 그의 두번째 앨범. 여전히 뛰어난 곡들과 갈수록 세련되어지는 그의 목소리, 세션. 그가 앨범 제목에서 말한 것처럼 제2의 전성기를 열 수 있는 앨범이 아마도 될 수 있으리라.

Intro 몽상적(夢想笛)
: 빠른 리듬과 함께 알수없는 수많은 소리들의 혼합. 말 그대로 꿈꾸는 피리소리를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재밌는 것은 도입 부분에서 '왜 안해오시나'라고 묻는 한 여성의 목소리에 '제발, 지금 생각중이잖아요'라고 대답하는 성우의 신경질적인 반응. 아마도 끊임없이 '만들어내기'가 직업인 작곡가의 심정을 나타낸 것은 아닌지...

하늘을 달리다
: 아무도-왼손잡이-UFO-숨은그림찾기-랄랄라에 이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적풍'의 곡. 구원의 목소리를 향해, 지금의 못난 나를 딛고, 하늘을 달리다.

그땐 미처 알지 못했지
: 달팽이-기다리다-내 서랍속의 바다에 이은 또 다른 '이적'풍의 곡. 지나간 사랑의 소중함, 알지 못하고 지나간 사랑에 대한 또다른 기다림...

바다를 찾아서
: 너무나 힘들고 괴로운 이 공간을 떠나, 나 혼자만의 이상향을 향해 떠나는 즐거운 상상.

장난감 전쟁
: 마치 장난감 전쟁처럼 아무런 죄책감 없이 죽이고, 베는 현실. 이러한 전쟁을 TV로 보며 마치 영화를 시청하듯 환호하는 사람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의 모습. 또 하나의 '은근슬쩍'의 미학

어느날
: 자우림 김윤아와 듀엣으로 부른 곡. 너의 뜻대로, 널 죽인 것도, 널 사랑하기 때문이야.

서쪽 숲
: 말뿐인 이상향 서쪽 숲. 결국 존재하지 않는 서쪽 숲에 대해 노래만 부를 수 밖에...

거울놀이(간주곡)

그림자
: 그림자와 같이 나와 붙어 다니며 옭아매는 또다른 나, 하지만 그림자처럼 그것을 떨쳐낼 수는 없다.

착시(錯視)
: 이토록 어두운 나와 내 현실. 하지만 기적과 같은 작고 여린 빛을 아직 기대하는...

순례자
: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길, 잘 가고 있는 것인가? 후회는 없을까? 나 죽을 때, 웃으면서 즐거웠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앨범중 가장 긴 곡, 하지만 그 길이가 전혀 지루하지 않은 곡.

그땐 미처 알지 못했지.
: 김진표가 랩을 참여한 곡.

지금 되돌아봐도, 역시 '이적'의 앨범다운 앨범. 그의 화수분이 영원히 마르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