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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주변을 바라보는 차가운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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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독 : 곽경택
출연 : 정우성, 김갑수, 엄지원

친구, 챔피언, 그리고 똥개. 왠지 비슷한 냄새가 풍긴다. 그리 세련되지 못한 서술, 작품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남성성, 경상도 사투리, 그리고 보는 이로 하여금 전신에 힘이 들어가게 만드는 인상깊은 장면들. 어느덧, 곽경택은 나에게 있어 자신만의 땀내나는 색깔을 풍기는 작가가 되어 있었다.

물론, 비판의 여지는 많다. 그의 이유없는 남성성에의 애정은 그러한 색깔을 싫어하지 않는 나에게도 약간은 질력이 날 정도다. 여지없이 나타나는 경상도 사투리를 배경으로 하는 격렬한 격투와 땀내나는 남성성. 이제는 지치기도 하지만  이러한 것이 반대로 '곽경택'의 색을 더욱 뚜렷하게 나타내주는 요소이기도 하다.

'똥개'에서는 약간은 영화밖의 시선을 담으려고 한 시도가 엿보인다. 영화 대사중 무수히 등장하는 '있는 놈은 풀려나고, 없는 놈은 잡혀들어간다'는 우리 사회에의 일침, 어느덧 가족 내에서는 주변인으로 몰락해버린 '아버지'에 대한 애환과 또다른 시선, 그리고 가장 주된 이야기인 불의에 저항하는 순박한 '똥개'의 이야기. '친구', '챔피언'에서는 자신의 색을 만들어가느라 시놉시스 밖으로 시선을 돌릴 여유가 없었다면, 이번에는 메인 스토리 안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담으려고 시도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어느덧 자신의 색깔을 나타내는 영화 써내려가기에 익숙하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

평소에 화를 많이 낼 뿐더러, 직접적으로 감정을 표출하는 사람은 그리 무섭지 않다. 그러나 평소에 화내는 경우가 거의 없으면서, 자신의 감정을 묘한 은유로 표현하는 이는, 상대방이 그 은유를 읽었을때 전자의 사람보도 훨씬 두려움에 떨게 한다.

영화에서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법 또한 비슷하다. 직접적으로 '무엇무엇은 어떠하다'는 식으로 감독의 관객 세뇌하기가 계속되는 경우, 관객은 크게 움직이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영화는 유치한 이야기가 되고 만다. 진정으로 관객을 움직이는 영화는 관객이 스토리를 따라가는 사이, 자신도 모르게 감독이 이야기하는 바를 깨닫게 될 때, 뒤돌아 선 후에도 무엇엔가 맞은듯한 충격을 안겨줄 수 있다.

그러나 '똥개'에서의 이러한 시도는 허사로 돌아갔다. 주인공이 자신의 개를 잡아먹은 친구에게 나타내는 분노를 이해하기에는, 주인공과 개의 친밀함에 관한 묘사가 부족했다. 주인공이 아버지를 이해하기에는 그들의 '부자지간'에 대한 묘사가 부족했다. 그리고 친구들과의 의리를 나타내는 것 역시, 그들이 그정도의 우정을 갖게 되는 과정에 관한 묘사가 부족했다. 단지 관객은 감독이 설정해 놓았음을 이해해서 스스로 감독의 이야기를 찾아봐야 했고, 그 때문에 감독이 의도한 무수한 이야기들은 관객의 가슴속에 파고들기보단, 그저 읽히는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결국, 관객은 감독이 무엇을 제대로 이야기하고 싶어 했는지, 무엇이 이 영화 속에 담겨있는 것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체, 크레딧을 보아야만 했다.

커다란 사건 없이 그저 일상생활을 묘사하는 것만으로 관객들 가슴을 크게 흔들었던 '8월의 크리스마스', 그리고 그와 같이 일상생활을 주로 묘사하는 가운데 굵직굵직한 사건과 장면들을 끼워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의 가슴에는 다가가지 못한 '똥개'. 이제 곽경택은 자신의 색깔을 확립하는데는 어느정도 성공한 듯 하다. 하지만, 그 자신의 색깔을 세련된 모습으로 드러내기에는 아직은 아쉬운 작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