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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의 변신은 무죄[조선여형사 다모]

2003.09.16 22:47

TOTO 조회 수: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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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월, 화 밤 9:55
연출 : 이재규
극본 : 정형수
출연 : 하지원, 이서진, 김민준, 권오중, 이문식, 노현희, 박영규, 이한위, 신승환, 윤문식, 정욱, 정호근, 권용운, 안계범
방송 : 2003. 07. 28 ~ 2003. 09. 09

예고편을 봤다. 사극은 사극인데, 홍콩 무협영화를 따라한 사극. 지금껏 TV드라마에서 와이어액션을 본 기억이 없다. '여름향기'를 이기기 위해 돈으로 승부하누나. 영화라면 돈칠이 그나마 먹히긴 해도, 드라마에서의 돈칠은 티도 별로 나지 않을 뿐더러, 익숙하지 않은 것이라 거부감을 일으킬 지도 모를 일이다. PD이름도 처음 듣는데, 뭘 믿고 돈을 쏟아 붓는 건가. 이런 별의별 생각을 다 갖고, 흥미 반, 냉소 반으로 첫회를 봤다. 사극을 절대 보지 않는 나였지만, 드라마에서의 돈칠이 어떠한 것인지는 궁금했으니까.

마치 영화를 보는듯한 HDTV용 화면, TV화면이라는 열악한 조건을 최대한 활용한 편집과 화면구성, 그리고 지금껏의 사극에서 느꼈던 긴장과 흥미와는 차원이 다른 재미. 결국, 첫회부터 마지막회까지 모두 본 최초의 사극이 탄생하고 말았다.

흔히 역사소설의 구성은 실제 기록을 바탕으로 옥수수가 뻥튀기가 되 듯, 실제에 작가의 상상력을 붙여 완성해간다. 실제의 기록이 많이 바탕이 될수록, 사실적이고 진중한 감은 있지만 흥미는 반감된다. 반면, 바탕이 되는 실제가 적을수록, 흥미는 배가 되지만, 그만큼 사실성이나 역사물의 무게감은 덜해간다. 다모 역시 실록에서 발견한 기록을 바탕으로 한다. 그러나, 그 기록은 단 몇문장 뿐이다. '포도청의 다모는 차를 따르는 관비이지만, 범인을 잡는 여형사의 역할 또한 행했다.'로 요약될 수 있는 몇 문장. 그 몇 문장을 바탕으로 다모는 우리의 눈앞에 다가왔다.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만큼 긴장감과 흥미가 진진했다는 뜻이다. 물론 여느 사극에서 등장하는 것처럼 무슨무슨왕, 몇년 같은 기록이 없는 터라 역사극다운 진중한 맛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 진중한 맛에 길들여진 우리에게 다모는 반기를 들었다.

주된 이야기는 긴장을 가장 잘 이끌어낼 수 있는 수사물이다. 자잘한 사건을 통해 생소한 관직(?)인 다모의 성격을 구성해 갔던 전개과정, 그리고 마치 능력이 있어도 경제력이라는 선에 의해 그어져 있는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과 묘하게 맞물렸던 신분에 의한 인간적 고뇌와 신분 때문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그리고 위정자들에 대한 반란을 소재로 삼아 간접적이지만 강한 우리 사회에 대한 풍자. 이런 다양한 작가의 시선을 일관된 이야기 전개를 통해 조용히 이끌어 가고 있다. 그러한 조합이 자연스러울수록 시청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이러한 작가의 목소리를 느낄 수 있게 되고, '다모'는 이러한 점에서 세련된 표현까지도 훌륭히 해내고 있었다.

영상적 측면에서는 현재 우리 나라 기술로서는 어색할 수 밖에 없는 와이어액션을 편집기법을 통해 자연스럽게 연출했던 점이나, 우리나라 TV드라마에서는 지금껏 보지 못한 트래킹셧을 자연스럽게 연출한 점, 그리고 수려한 촬영지를 섭외하여 무술사극의 맛을 한껏 높였던 점 또한 드라마의 완성도에 일조를 했다.

그리고 주연인 이서진, 하지원의 연기는 물론, 신예인 김민준, 그리고 변신한 연기의 색이 너무도 괜찮았던 권오중과 너무나 맛깔스런 조연 이문식과 신승환, 이한위의 연기까지 모두가 흠잡을 곳이 없었다. 또한 그들이 뱉어 내었던 주옥같은 대사들(물론 작가의 작품이긴 하지만) 또한 인기가도를 달리게 하는데 한 몫했다.

이제, 우리 드라마에도 또 하나의 장르가 탄생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다만, 이만한 작품이 시청률 20%대에 머물렀다는 것이 아쉽긴 하다. 아직, 브라운관 속의 어지러움이 어르신들에게는 어색한 것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