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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지 않는 성담론[싱글즈]

2003.10.06 17:52

TOTO 조회 수: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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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독 : 권칠인
출연 : 장진영, 엄정화, 이범수, 김주혁, 오지혜, 한지혜, 송재호, 이휘재

아직까지 성에 관해서는 철저히 보수적인 우리 사회에 '결혼은 미친 짓이다'에 이어 또한번 성에 관한 반항을 던져준 영화라고 평가되는 작품이다. 물론 아직까지는 음지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성이란 녀석을 양지로 끌어낸 것 자체만으로 가치가 있다면 할 말이 없지만, 항상 공전의 히트는 쓸데없이 나의 기대를 부풀려 그 실망의 늪 또한 깊게 만든다는 사실을 또다시 느끼게 한 작품이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보면서 느낀 점은 과연 우리 사회에서의 '결혼'이라는 제도 때문에 나 스스로 결혼 이외의 또 다른 사랑으로부터 나를 격리시키려는 노력, 그것이 당연한 것인가에 대해서다. 아직까지 그런 생각이 든 적은 없지만, 조건에 의해서 할 수 없이 결혼을 하고, 내가 원하는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서 느낀다면. 그리고 사랑해서 결혼 했지만 그 이후 다른 사람에게서 더한 사랑을 느낀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과연 사회를 지탱해나가기 위해 존재하는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 나의 또 다른 자유를 박탈당하는 것은 아닌가.

엄정화의 입에서 무수히 쏟아지는 성에 관한 농, 순박한 연기 자체로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내는 장진영, 이 두 배우에 의해서 코믹을 표방한 이 영화의 코믹적 요소는 거의 다 주도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코믹적 요소 가운데, 단지 임신을 했다는 이유로 결혼을 강요받는 현실을 외면하는 엄정화, 현실에서 당연시 되는 결혼을 거부하는 장진영, 순수한 사랑 대신 조건을 택한 애인으로부터 버림받은 이범수의 이야기는 어느새 묻혀 있었다. 그저 억지로 이끌어내어진 얼마의 웃음 때문에 보다 관객들에게 와 닿을 수 있는 성담론은 희석되어 있었다. 결국 이 영화는 그리 재미있지도 않은, 그렇다고 과감하게 성이야기를 양지로 끌어내지도 못했다. 단지 여성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과감한 성적 농담이 관객들을 얼마간 자극한 것일 뿐이다. 장진영의 순수한 연기가 관객들의 눈에 들어왔을 뿐이다.

어쩌면, 아직도 성의 억압에 눌려있는 이 땅의 수많은 여성들의 고민을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좋은 소재를 두고서, 그저 겉만 가볍게 핥는 꼴이 된 것이 아쉽기만 하다. 엄정화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농과 직장상사를 골탕먹이는 소위 액션플랜(Action Plan)이 여성의 성억압을 풀어내는 중요한 장면이라고 여기는 여성은, 혹은 이런 장면을 여성의 권위상승이라 여기는 남성은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