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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김희선표 드라마[요조숙녀]

2003.08.28 00:35

TOTO 조회 수: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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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  수, 목 밤 9:55
연출 : 한정환
각본 : 이희명
원작 : 야마토 나데시코(내사랑 사쿠리코)
출연 : 김희선, 고수, 손창민, 박한별, 임현식, 권해효, 이윤성, 신정환, 김정난, 조이진, 선우은숙

'김희선표'는 내가 붙인 이름이다. '~표'나 '~류'란 이름을 붙인 다는 것은 분명 '비슷한 성격'이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내가 생각하는 '김희선표' 드라마의 원류는 1990년대 중반에 방영된 '프로포즈'였다. 물론 김희선이 등장한 드라마는 그 이전에도 '공룡선생'등 몇몇 작품이 있지만, 이들은 '김희선표'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는 그 성격이 매우 희미하기에, 이 글에서는 논외로 한다. 여기에서 다룰 SBS 드라마 스페셜 시리즈의 '미스터 큐', '토마토' 모두 배우 '김희선'을 앞세워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드라마였다.

이들 드라마군은 철저히 '대중적'코드를 따라간다. 이들이 다루는 소재는 '사랑'이다. 그리고 이들 사랑은 삼각관계 속에서 보다 깊어지고 결국 힘든 사랑은 이루어지게 된다. '프로포즈'에서는 김희선을 사이에 두고 오랜 친구였던 류시원과 결혼의 상대자로 이창훈이 삼각관계를 이루었었고, '미스터 큐'에서는 김민종을 사이에 두고 김희선과 송윤아가, 그리고 '토마토'에서는 김석훈을 사이에 두고 김희선과 김지영이 삼각관계를 이루었었다. 그리고 이번 '요조숙녀'에서는 고수, 손창민과 함께 삼각관계 속에서 사랑을 찾아 헤메고 있다. 이들 구조 속에서도 김희선은 주로 사랑을 받는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서로의 오해와 해결을 통해 사랑의 끈을 밀고 당기면서 사랑을 키워나가는 과정을 통해 극을 전개시킨다.

또 하나의 특징,  이들 드라마군은 감각적인 조연을 캐스팅하여 극의 전개상에 있어 코믹과 함께 걸출한 신인을 배출하곤 했다. '프로포즈'에서 말없이 개와 함께 산책하던 조연으로 분했던 원빈은 최고의 스타로 군림하였고 조은숙 역시 코믹한 배역을 맡긴 했어도 이 드라마를 통해 스타로서의 자리매김을 단단히 했다.  '미스터큐'에서 권해효와 박광정, 정원중, 최정윤은 드라마의 전체분위기를 밝게 하는데 없어서는 안될 요소였고, 김민종을 짝사랑하는 직장상사로 분했던 송윤아 역시 이 드라마를 통해 스타로 등극했다. 또한 '토마토'에서도 김지영은 '복길이'의 이미지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면모를 보이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듯, 우연인지 아니면 필연인지는 몰라도 '김희선표'드라마를 통해 많은 미남미녀스타가 등장하였고, 또한 탄탄한 조연을 통해 코믹한 요소를 제공하여 '김희선표'드라마의 성격을 형성하였다. 그리고, 이들 드라마군은 보통 주연에 비중이 많기에 여타 드라마에 비해서 조연의 무게가 상당히 가볍다는 특징 역시 가지고 있다.

또한 '김희선표'드라마에서는 철저히 현실성이 결여되어 있다. 이들 드라마군에서는 현실 보다는 낭만적인 사랑에 보다 중심을 두며 따라서 가끔은 시청자들이 이해하기 힘든 장면 역시 단지 '사랑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한 과정으로 적절히 이해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비현실적'구성은 드라마 자체는 너무나 아름답게 포장할 수 있지만, 시청자들은 철저히 '현실이 아님'을 인지한 채로 드라마를 볼 수 밖에 없고 이는 '적정정도'의 시청률을 유지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원인이다.

물론, 이들 특징은 연출자의 의도된 것일 소지가 다분히 있다. '미스터큐'와 '토마토'가 장기홍PD 한 사람에 의해 연출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송사와 연출가가 다른 작품에서도 비슷한 성격을 갖는 드라마로 인식되는 것을 보면, 아마도 김희선이라는 배우의 색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라고 볼 수 밖에 없겠다.

개인적으로 김희선이라는 배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카랑카랑한 이미지와 부담스러울 정도로 밝고 똑부러지는 미인형의 얼굴. 하지만 인간적인 면에서의 호불호를 떠나 배우로서만 본다면, 일정정도의 시청률을 의지할 수 있는 탄탄한 배우임은 틀림없다. 이는 배우 평가의 잣대인 '연기력'을 떠나 TV드라마라는 매체에서 갖는 배우의 호소력이 더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지금 작품인 '요조숙녀'를 제외하면 모두 지고지순한 착한역을 맡아왔다. 너무나 여리기에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도 못하는 역할, 어찌보면 평소의 김희선이미지를 떠올린다면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매칭이지만, 김희선은 드라마 전체를 자신의 분위기로 이끄는 묘한 매력이 있기에 어느덧 그 역할과 너무나 동화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그녀의 매력은 드라마의 회가 거듭될수록 발산되는 것이기에 드라마에서는 어느정도 통할 수 있으나, 영화에서는 그 매력을 마음껏 발산하기에 시간이 너무 짧다. 이것이 브라운관에서는 그토록 환영해도 극장에서는 관객들이 그녀를 그다지 보고싶어하지 않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가 갖는 매력이 드라마에서는 '어딘지 모르게 깔끔한', '마치 창가로 들어오는 햇빛같은 화사함'이 느껴지도록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며, '김희선표 드라마'를 본 후에는 항상 말끔한 이미지들만 머리속에 형상화 되어 있다.

'요조숙녀' 역시 '철저한' 김희선표 드라마이다. 손창민과 고수의 사이에서 사랑을 갈등하는 주인공 김희선, 그리고 등장인물의 살아가는 이야기는 철저히 배재한 '비현실성', 또한 박한별이라는 감각적인 조연과 권해효, 신정환 등의 조연을 통해 신선함과 웃음이라는 두가지 요소까지, '김희선표 드라마'의 모든 조건을 갖췄다.  김희선이 분한 주인공 하민경의 성격이 지금까지의 지고지순한 것과는 다른 지나치게 현실적이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물론 이야기의 전개가 앞으로 어찌 될지 역시 훤히 보인다.

하지만 공식에 의해 구성되는 등장인물의 관계, 뻔히 보이는 이야기전개, 비슷비슷한 등장인물 등 수많은 약점에도 불구하고, 여느 '김희선표 드라마'와 같이 '요조숙녀'는 재밌다!! 김희선의 새침한 연기, 관록의 손창민의 연기, 신정환의 어눌함, 얼굴은 너무나도 이쁘지만 연기에 있어서는 웃음을 자아낼 정도로 서툰 박한별까지도 드라마 속에서는 매력으로 존재한다. 또한 전혀 생각할 필요 없는 단순한 극전개 역시 '김희선표 드라마'의 강점을 그대로 살려간다. 게다가 덤으로 너무나 아름다운 호주의 구석구석을 살펴볼 수 있는 행운까지. 그리고 또 하나의 보너스는 고수의 '어머니는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요'라는 대사를 통한 유희와 중학생 발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영어실력 까지도 '김희선표 드라마'이기 때문에 그저 넘어갈 수 있고 오히려 웃음으로 승화될 수 있는 요소이다.

드라마는 현실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지만, '김희선표 드라마'에서는 예외다. 김희선이 등장하는 드라마가 현실적이라면, 김희선의 매력 또한 반감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실을 반영한답시고 가난한 김희선이 초라한 분장을 하고 사투리를 쓰는 모습보다는 아무리 어려운 처지라 하더라도 깔끔한 차림의 화려한 김희선을 보기를 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김희선표 드라마'가 적정정도의 시청률을 보장해주는 요소이기도 하지만, 도저히 '변신'이 불가능한 배우 김희선과 단지 포장만 이쁘게 만들려 하는 '김희선표 드라마'가 갖는 맹점이기도 하다. '김희선표 드라마'라면 그저 아무 생각없이 사랑이야기가 듣고 싶을 때 보는 드라마라면 그걸로 족하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연출가라면? 아마도 안정적인 시청률이 필요한 초짜 PD라면 '김희선표 드라마'를 제작한다는 것이 대단한 행운이겠지만, 시청률을 초월한 위치에 도달하게 된다면 아마도 가끔 청량제 같은 기분으로 연출을 하고 싶을 드라마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