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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주변을 바라보는 차가운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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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리 프로젝트, 그 존재에 대해 알고는 있었지만 관심 밖이었다. 옴니버스 영화에 대한 관심은 나의 단편영화에 대한 관심 만큼이나 기회 되면 보고, 안되면 마는 식 정도였으니. 전편의 쓰리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좋아하는 배우인 김혜수가 등장했던 포스터만 아련히 기억날 뿐, 그 외엔 아는 바가 없다. 물론 이번 영화도 아마 박찬욱이 참여하지 않았다면 지금만큼 회자되기도 어려웠을테고, 인구에 회자된다 해도 난 당연히 스쳐지나갔을테다. 그러나 우연한 기회에 스쳐지나가는 찰나를 만나게 되고, 그 찰나는 나에게 꽤 괜찮은 순간이 되었다.

이 영화에 담긴 3편의 영화가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지금껏 모르고 지나쳤거나, 지나치려 했거나, 아니면 숨기려 했던 인간의 본능이다. 그 본능은 우리의 이성에 의해 판단되고, 그 결과 이에 어긋나는 본능은 철저히 감추어지지만 그렇다고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애써 숨긴 덕분에 우리에게 보이지는 않지만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하는, 우리에게는 부끄럽기만 한 그 잣대에 의해 잘려진 본능을 적나라하게 들춰내는 것. 그것이 이번 프로젝트의 임무였다.


1. CUT - 박찬욱
출연 : 임원희, 이병헌, 강혜정

학창시절, 성선설과 성악설을 배우며 과연 무엇이 옳을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그 성인들의 싸움은 단지 말장난에 불과하지 않았나 하고 생각이 들 뿐이다. 박찬욱은 말한다. 인간이 선하게 태어났건, 악하게 태어났건 그건 그가 어디서 태어났는가에 불과하다고. 매일 부모로부터 구박받고, 얻어터지며 자랐다면 그는 매일 마누라를 패고, 아침에 일어나서 부어있는 마누라의 상판대기를 보고 기분나빠하며 집을 나설 수 밖에 없다. 교양있고 잘 사는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면 얼굴도 잘생기고, 공부도 잘하며, 당연히 착할 수 밖에 없다. 부족한 것이 있어야 범죄도 저지르고 성격도 나빠질테니. 인성은 자본에 의해 결정되며, 그 결정은 대대로 물려받게 되는 것. 그것은 당연한 이치다.

물론 이건 그를 둘러싼 호화찬란한 무대가 굳건히 서 있을 때 뿐이다. 그를 둘러싼 것이 견고한 건물이 아닌, 판때기 하나로 겨우 이루어진 무대라는 것을 안다면 아무리 착한 그도 더이상 착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욕도 할 줄 알고, 어린 생명도 죽일 줄 안다. 결국 잘 길들여진 우리의 인성은 우리를 둘러싼 얇은 무대가 견고하게 서 있을 때 까지만 존재한다. 우리가 우리를 둘러싼 무대를 알아채는 순간, 그 무대는 너무나 쉽게 쓰러지며 그 순간. 우리의 공든 탑은 무너지고 감춰져 있던 본능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의 본능은 어떤 허상에서 어떻게 형성되었느냐에 따라 어느정도 감춰지느냐의 차이를 만들어 낼 뿐, 그 허상을 CUT 하면, 본능이란 결국 다 같다.

인물의 심리를 철저하게 대신하는 현란한 카메라워크와 미장센. 덕분에 난 인물의 숨소리까지도 듣는 환상을 일으켰다. 박찬욱은 스토리만 재미나게 엮는 작가가 아니었다.


2. BOX - 미이케다카시

사랑과 관심을 받고자 하는 욕망 또한 인간의 주된 본능 중 하나다. 그런 강한 욕망 덕분에 언니를 상자안에 가두고, 자신만 살아남고자 하는 동생. 사랑 역시 추한 인간의 욕망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 어떤 욕망보다도 추할 수 있기 때문에 아름답게 포장되고, 또 포장되는 욕망. 그런 욕망 덕분에 동생과 언니는 하나이면서도 다른 시간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운명에 처한다. 뗄 수도 없는 다른 운명, 불행은 사랑 때문에 더욱 불행하게 된다. 아무리 자신의 욕망을 박스에 눌러놔도, 그것 역시 나와는 뗄 수 없는 나의 일부분인 본능이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어지지 않는......

처음과 끝이 같은 형식, 물론 어느정도 식상하지만 이 영화의 약간은 몽환적인 맛을 살리는데는 적당한 형식이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화창하지 않은 날의 설원, 온통 회색빛인 집. 세편의 영화 중 가장 공포영화 다운 영화의 느낌을 준다. 물론 전통적인 일본식 공포의 느낌이긴 하지만......


3. 만두 - 프루트 챈

젊음. 영원히 붙잡을 수 없는 것이기에 그에 대한 욕망은 어느 것보다 더더욱 크다. 그 강렬하지만 부끄러운 욕망. 그 욕망을 들키지 않도록 강력분을 사용하여 쫀득하게 빚은 만두피로 싸서 목으로 넘기는 중년의 부인. 젊어질 수만 있다면, 그래서 남편을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는 이 부인을 누가 욕할 수 있겠는가. 결국 그 무한한 욕망은 오랜동안 간절히 바라던 자신의 아이가 생겼는데도 날카로운 금속을 자신의 생명의 문으로 찔러넣는 결과를 낳는다. 그래도 우린 그녀를 욕할 수 없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철저히 숨긴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에......

갖가지 안이쁜 재료의 혼합물을 고운 색과 쫄깃한 질감을 가진 표피로 잘 감싼 만두. 그만큼 인간을 잘 설명하는 음식이 있을까? 작가의 관찰력에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만두가 먹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