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한국어

시선

주변을 바라보는 차가운 눈
1_1024.jpg

★★★
KBS2  수, 목 밤 9:50
연출 : 표민수
극본 : 민효정
원작 : 원수연
제작 : 김종학 프로덕션
출연 : 송혜교, 비, 김성수, 한은정, 장용, 선우은숙, 김지영, 임예진, 도한, 이영은

여름내내 불었던 신데렐라 열풍이 '풀하우스'가 종영됨으로써 그쳤다. MBC의 '황태자의 첫사랑'은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SBS의 '파리의 연인', KBS의 '풀하우스'가 연이어 시청률 1위를 기록함으로써 우리나라 드라마에 있어 신데렐라 이야기는 여전히 최고의 아이템임을 입증했다. 이러쿵 저러쿵 많은 비판을 받지만 여전히 대중들은 환상을 좋아하고 또 동경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영재(비 분)는 잘나가는 영화배우다. 까다로운 성격과 자존심의 소유자여서 배우인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아버지(장용 분)와는 왕래도 하지 않는다. 그는 우연히 덜렁대지만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지은(송혜교 분)을 만난다. 영재는 오랫동안 친구로 지내온 혜원(한은정 분)을 사랑하지만 혜원 역시 오랫동안 민혁(김성수 분)을 짝사랑해 온 터라 그의 사랑을 무시하게 되고, 자존심 강한 영재는 홧김에 지은과 계약결혼을 하고 만다. 서로 맞지 않는 성격 때문에 매일 다툼 뿐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은 서로에게 호감을 갖게 되고, 결국 진실로 사랑하게 된다.

드라마는 원작이 만화인 만큼 철저히 판타지를 추구한다. 등장인물간의 만남은 철저히 우연에 근거하고 있고(비행기 옆좌석에 앉았던 유명한 영화배우와 또 같은 호텔에 투숙하게 되는 과정 등), 그들이 관계맺는 과정 역시 현실에선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특수하다. 드라마 대부분의 배경인 영재와 지은의 집은 원작을 살리기 위해 특별히 제작된 멋진 전원주택이고, 등장인물의 의상과 헤어스타일(특히 지은)은 철저히 비현실적이다. 가끔 등장하는 외식 장면이나 영재와 민혁, 혜원이 끌고 다니는 자가용은 너무나 호화롭기에 우리네 삶과는 철저히 동떨어져 있다.

지은은 부모를 여의고 가난하긴 하지만 돈만 밝히는 속물이 아닌 순수하고 맑은 20대 소설가다. 이 때문에 영재나 민혁에게 호감을 갖는 것 역시 그들의 배경때문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설정만으로 이 드라마가 신데렐라 이야기가 아니라고 부인하기는 힘들다. 비록 지은이 자존심도 있고, 돈을 밝히지는 않지만 돈에 구애받지 않을 정도로 경제력이 넉넉한 영재와 민혁을 만나 그녀의 인생이 뒤바뀌는 신데렐라 이야기의 큰 틀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드라마가 가진 이런 여러가지 흠에도 불구하고, 주연배우들의 연기는 빛을 발했다. 한은정은 여전히 표정없이 이쁘기만 한 배우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지만 주연인 비는 드라마 데뷰작인 '상두야 학교가자'에서 보여줬던 것 이상의 연기를 보여 영재의 맛을 살렸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시청률 1위를 점했던 것은 단연코 송혜교의 연기 덕분일 것이다. '순풍 산부인과' 이후 주로 비운의 여주인공 역할을 맡았던 송혜교는 지은의 역할을 통해 발랄한 연기 또한 '파리의 연인'의 김정은이나 '황태자의 첫사랑'의 성유리보다 한수 위임을 과시했다. 영재와 티격태격 하는 장면에서 보여준 연기 뿐만 아니라 항상 티격태격 하면서도 마음 속으로는 끝없이 영재를 향해 있는 지은의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했다. 깜찍한 외모로만 승부하던 그녀는 어느새 표정까지 살아있어 다양한 역할을 소화할 수 있는 드라마의 히로인이 되어 있었다. '순풍 산부인과'에서의 철없는 아가씨, '수호천사'와 '햇빛 쏟아지다'에서의 당차고 굳센 여장부, '올 인'에서의 비운의 여주인공, 그리고 다시 '풀하우스'에서 덜렁대지만 천진난만한 발랄녀까지 송혜교는 그녀의 연기범위를 또다시 넓혔다. 그녀가 또 어떤 변신을 하게 될 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여름 내내 브라운관을 지켰던 신데렐라 판타지들, 다들 뻔한 이야기를 갖고 뻔하게 전개했지만 '풀하우스'는 그 중 가장 유쾌했던 판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