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한국어

시선

주변을 바라보는 차가운 눈
C8835_00.jpg
★★★

감독 : 스티븐 스필버그
출연 : 톰 행크스, 캐서린 제타존스

헐리우드인이었지만, 그가 헐리우드인이라는 사실을 그동안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이색적인 소재를 통해 휴머니즘을 조명하는 'E.T', 몇 걸음 앞선 CG를 선보였던 쥐라기공원 시리즈, 최첨단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인간을 다시 바라보게 했던 '마이너리티 리포트', 결정적으로 그가 헐리우드인임을 깨닫지 못하게 했던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쉰들러리스트'. 그는 헐리우드의 자본과 기술을 충분히 이용하고 있었지만, 그의 영화에는 전형적인 헐리우드 영화의 공식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기에 그가 헐리우드인임을 알기 힘들었고, 그 덕분에 그의 영화는 전 세계인이 기대하는 즐거움이었다. 그랬던 그가 '터미널'을 통해 그 역시 전형적인 헐리우드의 영화인임을 공언했다.

영화는 지극히 간단하다. 크라코지아라는 국가에서 미국으로 입국하는 나보스키(톰 행크스 분), 그러나 입국하기도 전에 일어난 내전으로 그는 무국적자가 된다. 입국도, 출국도 하지 못하는 그는 결국 공항에서 생활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 순수한 나보스키는 공항 사람들과 친분을 쌓으며 살아가고, 그들 덕분에 아멜리에(캐서린 제타존스 분)와의 멋진 데이트도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던 중 내전이 끝나 그의 신분도 회복되어 공항을 나갈 수 있게 되고, 결국 그의 미국 방문 목적인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된다.

영화 초반에는 역시나 스필버그란 생각을 잠시 했었다. 입국 절차를 위한 요건이 충족되지 않아 공항에 사람을 붙잡아두는 웃지 못할 경우를 소재로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시스템이 다시금 인간을 얽매는 지금 우리 인간들의 자화상을 멋지게 풀어낸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 될 수록 그런 생각은 줄어든다. 나보스키의 소원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공간, 더 올라가면 인간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미국이라고 영화는 계속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침략자로부터 지구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국가가 미국임을(인디펜던스데이), 지구를 위기에서 지킬 수 있는 국가가 미국임을(아마게돈) 강조하는 팍스 아메리카나, 그 헐리우드의 전통이 그대로 답습되고 있다. 덕분에 동시에 난 스필버그가 헐리우드인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됐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무난히 흘러간다. 전형적인 헐리우드 영화처럼 사건의 기승전결은 명확하고 공항에 정착하는 나보스키의 모습과 그의 동료들은 누구나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요소다. 특히 나보스키와 아멜리에의 저녁식사 씬은 황당하면서도 실컷 웃을 수 있는 명장면. 하지만 그런 코믹적 요소만 돋보일 뿐, 나보스키와 동료의 관계는 그 결과를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로 간략히 묘사했다. 그리고 영화의 코믹적 요소 덕분에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는 나보스키의 모습은 전혀 감동적이지 못해, 영화의 마지막은 그 힘을 잃는다.

단순히 연인과 혹은 가족과 편안히 즐길 영화를 찾는다면 썩 괜찮은 영화. 그리고 덧붙일 한가지, 단순히 영화의 눈요깃거리 역할밖엔 안되지만 캐서린의 아름다움은 여전히 눈부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