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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주변을 바라보는 차가운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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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보컬을 중심으로 한 일련의 밴드(롤러코스터, 스웨터, 러브홀릭, 럼블피쉬까지.....)들을 줄줄히 탄생시켰던 장본인. 이들의 매력은 락 음악과는 전혀 매치되지 않을 것 같던 여성의 목소리를 절묘한 음악색깔로 녹여 어울리게 했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사랑스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한없이 냉철한 시선이다. 이 때문에 밝기만 한 분홍빛도 아닌, 그렇다고 우울하기만 한 보랏빛도 아닌 자줏빛이라는 이들의 이름은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이름이다.

그동안 이들의 자줏빛은 변함이 없었다. 분명 방송에 들고 나오는 노래들은 모두 분홍빛 일색이었지만, 그들 음반의 내면에 깔린 곡들은 모두 사회를 향해 차갑게 던지고 있는 비판적인 시선들이었다. 너무나 매력적인 보컬 김윤아의 입에서 '미쓰코리아' 등 여성을 향한 따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온다는 것이 아이러니컬 하기도 했고, 또 그 자체가 매력이기도 했다. 너무나 단순한 나는 이렇게 복잡미묘한 색을 가진 그룹이기에 자우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당연히 그들의 앨범 역시 한장도 없었다.

항상 내가 사건을 저지르게 되는 우연한 기회. 이것은 잠자기 전, '윤도현의 러브레터'를 보다가 갑자기 찾아왔다. 단순하게 경쾌하기만 한 '하하하쏭'을 타이틀곡이라 소개하며 부르고 있던 김윤아의 목소리에 갑자기 빠져든 것은 왜였는지 모르겠다. 후렴 구문인 '하하하하하!' 할 때의 목소리. 그 잠깐의 매력을 맛본 덕에 결국, 음반을 구매하고 말았다.

음반은 타이틀곡인 '하하하쏭'부터 앨범 자켓에 이르기까지 철저히 분홍빛이다. 'All you need is love'라는 제목부터 너무나 밝은 분홍빛 느낌을 전해주는 앨범. 김윤아 특유의 차가운 목소리는 듣기 어렵겠구나 하는 아쉬움이 잠시 들었지만, 앨범을 CD플레이어에 건 한시간 뒤, '위장도 보통 위장이 아니구만'하며 웃음을 지었다. 분홍빛인듯한 앨범이지만 여전히 자줏빛이었다.

1. LUV PILL
앨범 intro로써, 경쾌한 기타와 드럼 연주가 매력적인 곡. 앨범 전체의 분위기가 그리 녹록지만은 않을 것임을 암시하는 듯 하다.

2. 하하하쏭
이번 앨범의 타이틀. 장엄하게 시작은 하지만, 지나치게 단순한 곡. 그 지나친 단순함과 매력적인 김윤아의 보컬이 나를 뿅가게 했다. 의기소침한 나에게 손을 내미는듯한 가사에 맛이 간걸까? 아무튼 빌어먹을...ㅜㅜ

3. 사랑의 병원으로 놀러오세요.
조금은 센치하고, 조금은 발랄한 묘한 분위기의 곡. 어쩌면 '자우림'과 가장 잘 어울리는 분위기의 곡이다.

4. I saw him
비교적 헤비한 곡. 몽롱한 분위기가 매력적이다.

5. 거지
명쾌하면서도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곡. 힙합과 헤비의 절묘한 조화.

6. 曠野(광야)
전형적인 모던락풍의 곡. 제목의 광은 '넓을 광'이 아닌 '밝을 광'이다.

7.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1집의 '밀랍천사'와 비슷한 분위기. 암울한 분위기와 서글픈 김윤아의 목소리가 잘 어울린다.

8. 惡夢(악몽)
장중하고 무거운 분위기의 곡. 후렴구의 '오오오, 오오오오오'부분에서 실신 주의!

9. 실리콘밸리
성형천국인 우리나라를 빚댄 곡. 매력적인 외모의 김윤아 목소리로 이 곡을 들으면 기분이 묘하다.

10. 파트너
본격적인 사랑이야기. 깜찍한 곡에 맞게 김윤아의 목소리도 깜찍하다.

11. 17171771
너무나 달콤해 정신차리기 힘들다. 앨범 전체 중에서 가장 맘에 든다. 김윤아 그녀에게 이런 목소리가 있다는 사실에도 너무나 놀랐다. 사랑의 아름다움을 닭살 돋는 가사와 아름다운 멜로디로 형상화한 곡. 참고로 제목을 디지털 숫자로 썼을 때, 거꾸로 보면 'I LUV U'로 보인다. 한참 궁리하여 얻었다는......^^;

12. Social life
자아를 찾아 볼 새도 없이 마구 쫒겨가는 우리네의 삶. 그 절절한 고통이 담겨있다.

13. TRUTH
황혼 무렵에 연인과 함께 앉아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곡.


결국, 사랑의 달콤함만을 쏟아 놓을 것 같았던 앨범은 자우림 본래의 자줏빛을 잃지 않고 있었다. 달콤함과 냉철함의 조화. 그 반복 속에서 점차 빠져드는 매력적인 앨범. 점차 정형화 되는 듯한 느낌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