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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멋대로 해라2[아일랜드]

2004.10.20 12:17

TOTO 조회 수: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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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MBC 수, 목 밤 9시 55분
연출 : 김진만
극본 : 인정옥
출연 : 이나영, 김민준, 김민정, 현빈, 이휘향, 김인태

아일랜드는 드라마에서 작가의 색이 얼마나 짙게 투영되는지 알 수 있던 드라마 중 하나다. '네 멋대로 해라'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이번 '아일랜드'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을 게다. 연출가는 바뀌었어도 드라마를 끌고 가는 분위기는 드라마를 보는 내내 '네 멋대로 해라'를 연상시켰다.

'네 멋대로 해라'의 백미는 촌철살인의 대사였다. 드라마에 있어 어록이라는 것을 처음 유행시켰을 정도로 '네 멋대로 해라'에서 복수(양동근 분)와 경(이나영 분)의 대화는 너무도 은유적이고, 세련되었으면서도 멋있었다. 절제된 말 속에 무한한 뜻을 전달하는 맛, 그것이 작가 인정옥씨의 매력으로 크게 부각되었던 드라마. 그 밖에 마치 우리와는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는듯한 사고방식을 가진 인물들. 그러나 그들이 그려내는 세상은 철저히 현실적이었던 그런 아이러니컬한 맛. 그것이 '네 멋대로 해라'의 매력이었고, 그 때문에 폭발적인 시청률은 기록하지 못했어도 매일 그 드라마에 빠져 사는 마니아들을 양산해 낸 이유였다.

그런 작가였기에 '아일랜드' 역시 기대를 무척 했었었다. 그러나 주인공이 이나영이라는 사실부터 뭔가 찜찜했다. 전작의 인물들과 '아일랜드'의 인물들을 비교하자면 복수와 재복(김민준 분), 미래(공효진 분)와 시연(김민정 분), 경과 중아(둘 다 이나영 분), 동진(이동건 분)과 국(현빈 분)은 비록 딱 맞아 떨어지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비슷한 이미지의 캐릭터다. 게다가 그들이 하는 대사도 전작과 느낌이 비슷한 대사, 그리고 엇갈린 사랑 이야기라는 점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나에게 '아일랜드'는 '네 멋대로 해라2'에 불과했다.

물론 '아일랜드'만 따로 본다면 훌륭한 작품이다. 각 장면마다 구도를 신경쓰는 화면들은 연출가가 얼마나 영상에 신경쓰는가를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영상들은 아무 희망이 느껴지지 않는 주인공들의 삶과 더불어 특유의 어두운 맛을 잘 살려내고 있다. 이 드라마를 보며 왕가위를 생각했던 것은 이러한 영상과 젊은이들의 희망없는 이야기가 어우러졌기 때문일게다. '네 멋대로 해라'에서는 비록 복수의 병 때문에 슬프긴 했지만 그들의 사랑은 밝은 빛이었고, 그들의 삶은 어둡지 않았다. 하지만 '아일랜드'의 사랑은 아무런 희망 없는 사랑이고, 그들의 삶 역시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기존의 이미지를 과감히 벗어버린 김민준과 김민정의 연기는 탄복을 자아내게 했다. 슬픔을 웃음으로 돌려 말하는 능청스러운 비극의 주인공 시연과 재복, 분명 체화하기 힘든 캐릭터일진데 그 둘은 완전히 소화하고 있는 듯 보였다.

다만 드라마의 옥의 티는 국을 연기하고 있는 현빈이다. 물론 신인이라는 점 때문에 눈감고는 있지만 그의 연기 덕분에 난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가도 깨곤 한다. 어느 탤런트가 말했던가. 지나치게 코믹하거나 지나치게 슬픈 캐릭터는 연기하기 쉽지만 무표정한 캐릭터가 가장 연기하기 어렵다고. 신인에게 강국의 캐릭터는 분명 쉽지 않은 배역이다. 그리고 현빈에게는 벅찬 배역임에도 틀림없다.

'네 멋대로 해라'의 맛을 기대했지만 '네 멋대로 해라2'가 될 줄은 몰랐다. 그러나 뭐 어떤가? 그냥 '네 멋대로 해라'를 잊고 '아일랜드'를 즐기면 되지. 그렇게만 된다면 '아일랜드'는 분명 수작이다. 그러나 '네 멋대로 해라'가 생각나는 순간, '아일랜드'는 참신성 없는 그저 그런 작품이 되고 만다. 그리고 난 아직 '네 멋대로 해라'의 감동을 잊지 않고 있는 시청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