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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학생의 투정

2004.11.05 12:30

이현국 조회 수:618

학생회장 지원자 공고가 뜬지 어언 사나흘이 지났다.
조회수는 올라가지만, 누구하나 답변자는 없다.
장학금까지 내걸었지만, 도통 관심이 없다.
장학금은 커녕, 자신의 모든 시간과 정열을 투자하여야만 했던 과거의 학생회장 자리와,
장학금까지 줘가면서 약간은 사정(?)조로 부탁을 하여야 하는 지금의 학생회장 자리.
물론, 과거의 잣대로 지금을 재려 한다는 억측임이 분명하지만,
서글픈 것은 서글픈거다.

수업정보란에 무수히 올라오는 질문들.
XXX사회학 어때요? XXX교수님 어때요?
그들의 질문속에는 '학점 잘줘요?'란 말이 함축되어 있음은 당연하다.
거침없이 불어닥치는 취업불황의 시대.
무슨 전공을 배정받을지 모르는 학부제시대.
이러한 시대에서 그들에게는 '사회학'에 대한 열정 보다는,
'사회학과'라는 이름이 가져다주는 그나마 문과대학에서 나은 간판과,
훗날을 기약하기 위한 학점이 더욱 중요한 시점이다.

선배들은 '사회학을 이해하려면 XXX, XXX, XXX 과목 정도는 들어야 돼'
그러나, 그들에게는 사회학을 이해할 필요는 없다.
단지, 미래에 대한 준비가 제일 염두에 있을 뿐이니 그런 선배들의 조언과 충고는 다른 한귀로
흘러 나가기에 바쁘다.

섭커뮤니티. 있어서 좋다.
사회학과 학생인 그들이 아는 사람 하나 없어도,
얻고 싶은 정보는 잘 얻어갈 수 있으니...
그들이 사회학과로서 필요한 것은 이 정도이니,
이 공간이 어떻게 굴러가든 크게 상관은 없다.
선배들이나 친구들이 자리 마련해 주면, 머 참가할 수는 있겠지만,
아니면 그만이다.

사회학과라고 사회학과 사람들을 많이 알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런 그들에게,
사회학과 학생회장이라니,
남들보다 조금 더 학점을 위해, 영어를 위해 투자하는 시간이 부족할 판에,
자신의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학생회장이라니,
그들과 그리 필연적인 고리가 있지 않은 집단을 위해 희생을 하라니...
얼토당토 않은 요구다.

80만원의 장학금? 그정도로 영리한 그들을 꾀어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나?
문득, 글을 쓰다보니 그립다.
과실에서,
별로 그리 중요한 문제도 아닌 것으로 생각했지만,
서로 온갖 수단을 총 동원하여 토론하던 모습.
학회다 세미나다 수업이다 바빴으면서도,
술한잔 하자, 모이자란 말에 아무 군말없이 모여 잔디밭에서 술한잔 기울이던 모습.
술냄새 풍겨가며 수업 들어가도,
선후배들이 따스하게 전해주던 웃음과, 조용히 미소를 건네시던 교수님의 모습.
전공필수로 정해져 있어서,
선배들의 무수한 겁주기에도 불구하고 들을 수 밖에 없던 과목들,
속으로 씨발씨발 대면서도 울며 겨자먹기로 듣던 과목들.
그리고, 덕분에 조금이나마 사회학도임을 깨달았던 모습.
단대 공연에서 과 노래패의 '시종일관'을 듣고, 다들 여행스케치 앨범을 사던 모습.

비록 부전공, 2중전공 까지하고, 우수한 학점의 지금의 사회학도(?)들과는 거리가 먼,
전공도 제대로 이수하지 못하고, 학점도 형편없었던 사회학도였지만,
그들이 그립다.
물론, 시대의 소산이긴 하다.
이렇게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이런 방향으로 흘러갈 수 밖에 없어서 지금의 모습이 된 것....
안다.
하지만,
학생회장 모집공고를 보면서
너무나도 다른 그들을 보면서
잠시 떠올려봤다.
똘똘하지도 못하고, 아무 계산 못했던 우리들의 모습.
지금 그들로서는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우리들의 모습.

                      - 학생회장 후보 지원자 공고를 보고, 학과 커뮤니티에 푸념조로 올렸던 글 -


웹서핑 하다, 과거의 제 모습이 보이기에 퍼왔습니다.
나와는 다른 후배들의 모습에 마음이 심히 뒤틀려있었나봅니다.
이성적으로는 저의 그런 뒤틀림이 잘못이라 판단해도,
감성적으로는 그런 저를 끝없이 옹호하고 있는 이 모순.
제 선배들도 우리를 보고, 제 후배들도 우리를 보고 그 '다름'을 푸념했겠지요?
이런 푸념이 오고 갔던 시간조차도 행복했다고 여기는 지금입니다.